제주4·3 집단학살 마을 북촌·동복리서 73주년 위령제

허호준 2022. 1.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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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시기 대표적인 집단학살 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와 구좌읍 동복리에서 4·3위령제가 봉행됐다.

유족들은 북촌리와 제주4·3희생자 북촌유족회가 공동주관해 너븐숭이 4·3위령성지에서 거행된 '제73주년 제주4·3 북촌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4·3을 과거사 청산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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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결이 평화·인권의 보편적 모델 될 수 있도록 노력" 다짐
제73주년 제주4·3 북촌희생자 합동위령제가 21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위령성지에서 열려 유족들이 헌화하고 예를 올리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시기 대표적인 집단학살 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와 구좌읍 동복리에서 4·3위령제가 봉행됐다.

유족들은 북촌리와 제주4·3희생자 북촌유족회가 공동주관해 너븐숭이 4·3위령성지에서 거행된 ‘제73주년 제주4·3 북촌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4·3을 과거사 청산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4·3 당시 북촌초등학교에서 자행된 학살에서 살아난 고완순 북촌유족회장은 “70여년의 오랜 세월을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세월은 울음마저도 죄가 됐고, 강요된 침묵으로 암울함이 연속인 세월이었다. 억울한 죽음조차도 왜곡되고 폄훼됐던 긴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고 회장은 “4·3 수형인들 무죄 판결, 배·보상과 4·3특별법 개정 등을 통해 역사의 흐름은 정의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며 “4·3 해결이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모델이 되고 평화와 인권 정신의 산실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윤성식 북촌리장도 “4·3의 참화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진실의 역사가 됐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현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겠다”며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4·3 희생자 위령제가 21일 동복리 4·3평화공원에서 봉행돼 참석자들이 분향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후손들은 그동안 진상규명과 함께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 진력을 다 해왔다”며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4·3의 가치를 올바른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사례로 승화시키고, 평화와 인권의 보편적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북촌리 바로 옆 마을인 동복리에서도 오전 11시 합동위령제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족들은 마을 차원에서 준비한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희생자들의 넑을 기렸다.

제주4·3 초토화 시기인 1949년 1월17일 북촌리에서는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군인 2명이 숨지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제2연대 군인들이 마을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인근 밭으로 끌고 가 학살하는 등 이날 하루 350여명에 이르는 남녀노소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집들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인근 함덕리로 소개됐으나 불순분자 색출 등을 이유로 100여명이 더 희생됐다. 인근 동복리에서도 같은 날 오후 토벌대가 마을 주민 86명을 집단학살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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