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해도 괜찮아, 요즘 인테리어 대세는 클러터코어

김지윤 기자 2022. 1. 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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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맥시멀리즘 인테리어의 한 부류인 클러터코어가 각광받고 있다. 덴마크에 위치한 디자인 홈 갤러리 ‘디 아파트먼트(The Apartment)’는 클러터코어를 인테리어에 잘 녹여낸 곳 중 하나다. 디 아파트먼트 홈페이지


크고 작은 사진과 그릇, 레코드판으로 빈틈없이 채운 벽. 아무렇게나 놓아둔 것 같은 화분. 향수, 향초, 피겨 등 형형색색의 소품들이 놓인 선반. 통일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패턴이 뒤섞인 러그. “정리 좀 해”라는 잔소리와 함께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예상되는 이 풍경은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클러터코어(#cluttercore)’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테리어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다. 2022년 1월 기준 틱톡 조회수 31만건을 기록하고, 2만여건 가까이 인스타그램에서 언급된 이 해시태그는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꼽은 올해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클러터코어는 맥시멀리즘 인테리어의 한 부류로 ‘공간을 잡동사니로 어수선하게 꾸미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널브려 놓은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인테리어의 핵심은 자신의 공간을 ‘취향’대로 채운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물건을 축적하는 것에 무게를 둔 맥시멀리스트나 강박적으로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호더(hoarder)와는 다른 개념이다.

BBC의 벨 제이콥스는 지난해 5월 ‘새로운 인테리어 기준’으로 클러터코어 열풍을 다뤘다. 그는 벽면 대부분을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희귀한 수집품으로 꾸민 스페인의 예술가 후안조 푸엔테스의 집을 예로 들며 “활기차지만 지저분하지 않은 색감, 클래식에 대비되는 저렴한 예술품의 도발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미셀 누스바우머의 집 역시 다양한 시대의 옷, 동서양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가구, 독특한 세계관이 담겨 있는 예술품들이 혼재되어 있다. 세기를 넘나드는 매력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이 공간에서 미셀은 평온함을 느끼고 영감을 찾는다.

맥시멀리스트들의 집들이가 소개된 국내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 이미지.


국내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에도 클러터코어의 흐름에 동참한 맥시멀리스트의 활약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은 5평 내외의 작은 공간에서도, 전·월세 집에서도 자신의 취향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수진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과거의 맥시멀리즘이 물질 중심적이고 유행하는 물건들을 소유하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면, 지금의 맥시멀리즘은 본인의 취향에 집중한 표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트렌드가 대두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외부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자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집에서 해소하려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클러터: 깔끔하지 않은 역사(Clutter: An Untidy History)>를 쓴 제니퍼 하워드는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끼고 싶고,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며 “이때 물건은 말 그대로 보호막처럼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트렌드로 ‘클러터코어’를 꼽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팬데믹으로 여행, 공연 및 전시 관람 등의 경험 소비가 불가능해지자, 그 자리를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이 채웠다”고 설명했다. 픽사베이


수년간 대세였던 미니멀리즘을 향한 반기도 한몫했다. 절제하는 삶에 매료돼 미니멀라이프에 동참했던 홍지안씨(29)는 “이론대로 되지 않는 비움에 때때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맥시멀리스트임을 인정한 뒤 오히려 소비에 신중해졌다는 박정은씨(36) 역시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린 것이 아니라, 유행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버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22년 트렌드로 ‘클러터코어’를 꼽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의 근거도 주목해볼 만하다. 그는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한 트렌드 코드는 취향,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취향을 채워줄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었다”며 “물건 대신 경험에 투자하다 보니 미니멀라이프도 가능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여행, 공연 및 전시 관람 등의 경험 소비가 불가능해졌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물건을 위한 소비가 채웠다는 것이다.

일과 여가 등 새로운 기능들이 더해진 공간으로 진화했다는 의미를 담은 ‘레이어드 홈’이란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팬데믹 시대 집의 역할은 확장됐다. 한정된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것만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변화를 가장 빠르게 체감하는 곳은 인테리어 업계다. 김재희 바나나웍스 인테리어 홈스타일링 디자이너는 “최근 화려한 색은 물론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구나 소품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짐이 늘어나는 만큼 수납 분야가 세분화되고 셀프스토리지 시장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색감과 취향이 담긴 소품들로 꾸며진 인테리어는 시각적인 자극을 주고 삶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맥시멀리즘, 클러터코어를 보다 잘 구현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꾸미고자 하는 공간의 콘셉트를 분명히 하라”고 입을 모은다. 콘셉트를 정하면 이와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매치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물건을 중심으로 채우되, 일상의 물건과 관상용 물건의 공간을 분류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희숙 정리 전문가는 “각각의 물건들이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면 질서가 깨지고, 물건을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도 그 목적에 따라 제자리를 정해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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