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제재 만능론 버려라"..북한이 '레드라인' 넘으면?

조성원 2022. 1. 2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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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북한 이슈가 다시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잇달아 시험 발사한데 이어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재개를 시사했기 때문입니다.

■ 북한의 핵무기 '봉인 해제' 시사 속 안보리 대북 제재 움직임...중국과 러시아 반대로 불발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 결과가 기폭제가 됐습니다. 김 위원장이 "선결적,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은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이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스스로 밝힌 다짐을 뒤집을 태세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진=노동신문)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속도 마하10에 육박하는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현장을 직접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기존의 미사일 방어 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군사적 세력균형을 깨는 '게임 체인저'로 불리기도 합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무력 시위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현장에 참석할 경우 메시지의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이같은 도발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쏠리고 있는 국제 사회의 시선을 어떻게든 한반도로 되돌리려는 듯 보입니다.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맞춰 폭탄 선언을 내놓은 것을 보면 주된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11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더욱이 한국 역시 대통령 선거 과정이어서 북한의 동향이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1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데 대해 우려가 된다”고 말한 일도 무색해졌습니다.

이같은 상황에 미국 주도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추진하자 중국 정부는 북한 손을 들어주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현지 시각 1월 20일 북한 미사일 개발 관련자들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에 추가하려는 미국측 시도가 불발됐습니다.

중국이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보류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러시아까지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결정은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재 시도는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 중국 "미국, 대북 제재 만능론 포기해야"

중국의 이같은 태도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입니다. 1월 20일 류샤오밍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통화하며 "미국은 대북 제재 만능론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이 실질적 조치를 내놓아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해 대북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며 미국에 책임을 넘기는 듯한 태도마저 보였습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밝힌 내용입니다.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류샤오밍 중국 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20일 통화 사실을 전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이번 통화에서 노규덕 본부장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근본적 해결을 위한 조속한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중국 측의 건설적 협력을 당부했다"고 한국 외교부는 전했습니다.

연초 한때 중국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새해 들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이어가자 1월 11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현재 한반도 정세는 매우 민감하다"면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가 적극적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관할하는 유엔 안보리를 언급한 사실을 놓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역내 안정적 분위기가 필요한 중국이 북한 측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중국 외교부는 다시 이전의 발언을 반복하며 북한을 지원하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쌍궤병진(雙軌竝進), 즉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 추진이라는 기존 정책을 똑같이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북제재 요구에 대해 “덮어놓고 제재와 압력을 가하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없다”고 말했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덮어놓고 제재와 압력을 가하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거듭 증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안보리 구성원들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장기적으로 내다보며 현재 정세를 신중하게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추가 대북 제재와 같은 단기적 대응에 반대하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입니다.

■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이어지는 가운데 1년 5개월 만에 북한 화물열차 중국 도착

더욱이 1월 16일부터 북한과 중국 사이에 화물열차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1년 5개월 만의 육로 무역 재개입니다. 빈 차량으로 신의주를 출발한 화물열차는 압록강 건너 중국 단둥에서 화물을 연일 가득 싣고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급한 생필품과 의약품은 물론 건축 자재도 북한으로 건너간 사실이 KBS의 현장 취재로 확인됐습니다.

북한 화물열차가 16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역에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북중 육로 무역이 1년 5개월만에 다시 시작됐다. (사진=더우인)


북한이 새해 벽두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미국 주도로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사이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중국에서 북한으로 물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북한이 스스로 문을 닫았고 또한 수출이 금지된 품목은 아닐지라도 물자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가시적으로 물류가 들어가는 상황은 미국의 대북 제재에 맞서는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간주하면서도 북한 문제는 협력할 분야로 꼽았지만 현실은 엇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낼 채찍으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서 유엔 안보리 제재 카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중국, 미중 관계 '경쟁' 정의에 부정적

중국은 사실 미국 주요 인사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경쟁'이라고 정의하는 인식부터 거부합니다.
전략적 회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쟁'이라는 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은 미중관계를 경쟁, 대립, 협력(competition, confrontation, cooperation) 즉 3C 관계로 설명했는데, 중국은 미국이 실제로는 '경쟁'이란 인식의 틀에만 갇혀있다고 비판합니다.

관영 환구시보는 1월 20일 "워싱턴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대립과 억제가 본질"이며 "경쟁은 담론의 함정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중국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고도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경쟁이라는 인식과 전략을 유지하는 한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등 중국 인권 문제 제기,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제재, 남중국해 등지에서의 군사적 긴장이라는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북중 관계를 여전히 미중 관계의 지렛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중국의 '북한' 딜레마...미국 관계 지렛대이지만 '레드라인' 넘으면 곤란

다만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넘어 실제 시사한 바대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추가 실험하는 대형 도발을 할 경우 중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중국의 협조로 유엔 안보리에서 세차례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강화는 과거 한반도 사드 배치의 결정적 명분이 됐던 전례도 있습니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 태평양 지역 동맹 강화에 나서고 있는 미국에게 또 한번 군사력 증강의 강력한 명분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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