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다시 돌아가는 시계

은미희 기자 2022. 1. 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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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작가

엄마 방에 있었던 커다란 시계

주인 떠난 뒤 4년 동안 멈춰 서

엄마는 종일 라디오 켜고 지내

아버지가 생전 그렇게 했듯이

엄마 닮아가는 나를 문득 발견

세상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겠지

엄마의 방에 걸려 있던 시계에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꼭 4년 만의 일이었다. 검은 플라스틱 테두리를 두른 둥근 시계는 건전지를 갈아 끼우자 언제 멈춰서 있었냐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틱톡틱톡. 소리는 힘차면서도 맑았다. 엄마는 큰 시계를 주문했었다. 아야, 시계가 안 보인다. 큰 걸로 바꿔야겠다. 오래전 당뇨로 인한 망막질환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다른 한쪽마저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엄마 때문에 해마다 시계를 바꿔야 했다. 집에만 들어앉아 계시던 엄마에게 과연 시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엄마는 해마다 더 큰 시계를 주문했다. 나는 엄마의 요구에 맞춰 큰 시계를 찾았다. 더 크고 선명한 걸로. 그렇게 우리 집은 해마다 시계가 늘어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엄마는 그 큰 시계도 보지 못하셨다. 안 보인다. 이제 네 얼굴도 안 보여. 안 보이는 것은 시계뿐만이 아니었다. 내 얼굴도 흐릿하게 일그러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물들이 보이지 않으면서 엄마는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엄마가 그렇게 생의 활기를 잃어갈 때 시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틱톡틱톡, 시간을 나르고 있었다.

그 시계가 언제 멈췄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엄마가 119에 실려 병원에 가실 때까지만 해도 힘차게 움직였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시계는 멈춰 있었다. 마치 주인이 떠난 것을 안다는 듯이. 그 시계는 주인을 잃은 방에서 4년 동안 멈춰 서서는 버려지듯 방치돼 있었다. 응당 멈춰선 시계의 건전지를 갈아 끼워야 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나마 엄마의 부재를 환기하고 싶었다. 한동안 엄마의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엄마의 방에 들어가는 일은 새로운 용기가 필요했기에…. 그렇게 엄마의 방은 내게 오랫동안 금기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내가 히말라야에 있을 때, 그 설산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때, 자연이 주는 장엄함에 스스로가 낮아지고 있을 때 밤에 더듬더듬 손으로 방 안의 장애물들을 읽어내며 일어나다 그만 주저앉아 버렸고, 그 바람에 엉덩이뼈가 부서졌다. 서둘러 설산에서 돌아와야 했고, 그 뒤로 엄마는 자리보전하셨다.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처럼 타인의 손을 필요로 했다. 엄마에게 가장 큰 위안거리는 라디오였다. 엄마에게 라디오는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충실한 전령이자 위로자였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오래전에, 엄마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켜 놓고 지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어떤 때는 시끄럽다며 타박했고,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맵게 눈을 흘기시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머리맡에 있던 라디오는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간에 꺼지는 일 없이 늘 왕왕거렸다. 놀랍게도 곤하게 주무실 때 혹여 잠에 방해될까 봐 라디오를 끄면 금세 잠에서 깨 다시 라디오를 트셨다. 엄마는 그게 더 못마땅하셨다. 한데 언제부턴가 엄마도 아버지와 판박이처럼 볼륨을 키웠고, 밥을 흘렸고, 약을 잘 삼키지도 못했고, 식사 도중 곧잘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아버지가 그럴 때마다 엄마는 조금은 짜증스러워했고, 조금은 안쓰러워했다. 그런데 어느새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내가 니 아버지한테 왼종일 라디오를 켜놓는다고 미워했는데, 내가 그런다.”

어느 날 엄마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그 음성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보다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아버지의 뒤를 밟더니 4년 전,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하셨다.

한데, 문득 그런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말투를 따라 하는가 하면 엄마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엄마의 표정이 내 얼굴에 서려 있었다. 엄마는 내게 그러셨다.

“열심히 공부해라. 세상에 가장 쉬운 일이 공부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왜 그때는 엄마의 말씀이 생의 모범 답안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그때는 열정과 치기로 아슬아슬하게 생의 외줄 타기를 하면서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고, 어떤 때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로 치부하면서 지겨워했고, 따분해했고, 또 짜증스러워했다. 그때 엄마의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당장의 삶에 있어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조카들과 젊은 친구들에게 지금 하고 있다. 그것이 삶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부재와는 상관없이 당신 방의 시계는 이전처럼 틱톡틱톡, 흐를 것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생체의 긴장과 활기처럼 새로운 시간들이 가져다주는 풍경과 감각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엄마가 뒤늦게 아버지를 이해했듯이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대하는 자세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가치가 달라지는 걸 경험한다. 앞으로 지내야 할 세상이 어떤 풍경일지 알 수 없다. 유추해 볼 순 있지만, 그 질감까지는 알 수 없다. 부디 그 시간들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설날을 앞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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