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승연이라는 바람이 분다

2022. 1.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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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 만에 청룡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은 공승연. 일희일비를 가장 경계한다는 그녀지만 지금은 이 기분 좋은 미풍에 마음을 실어보기로 했다.
크롭 재킷 3백만원대, 롱스커트 1백70만원대, 롱부츠 1백60만원대 모두 미우미우. 모자 69만8천원 파비아나 필리피.

지난 연말, 20대의 마지막을 근사하게 마무리했어요. 늦었지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을 축하해요.

상 받고 나서 처음 하는 매거진 인터뷰예요.(웃음) 아직까지도 얼떨떨해요. 한동안 수상 영상을 매일 돌려봤어요. 소감 말하는 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마음이 뭉클해져서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진아’ 역으로 상을 4개나 받았잖아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배우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뿐 아니라 토리노 국제영화제에서는 여우주연상도 안았죠. 청룡은 남다르게 마음이 뭉클했나요?

완전 남달랐죠. 연기하면서 언제쯤 청룡에 가볼 수 있을까 했거든요. 첫 장편영화로 이렇게 좋은 상을 받아 기쁘고 감사해요.

첫 장편으로 신인상을 받긴 했지만, 승연 씨가 벌써 배우 10년 차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어요.

20대 때는 배우로서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계속 의심했거든요. 이 상을 받고 비로소 ‘나 조금 더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해도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관객으로서 궁금한 게 있어요. 청룡처럼 큰 상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시나리오가 갑자기 확 밀려들어온다거나 하는 극적인 변화가 있어요? 영화 보면 그렇잖아요.

안 그래도 저도 회사에 “대본이 좀 들어왔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나 이러다가 너무 바빠지는 거 아니야?’ 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봤는데, 아직까진 똑같아요.(웃음) 그래도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겠지 싶어 기대하고 있긴 해요.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설레하는 승연 씨를 보니, ‘진아’와의 온도차가 더 크게 다가와요. 영화, 아니 ‘진아’ 얘기 좀 해볼까요? ‘진아’처럼 어둡고 건조하고 지친 캐릭터는 처음이었잖아요.

연기하면서 계속 답답함을 느꼈어요. ‘진아, 왜 이래… 뭔가 조금만 더 표현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며 응원하는 마음이었죠.

MBTI로 말하자면 ‘진아’는 정말 극 ‘I’의 내향인인데 유승연(본명) 본캐는 어때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인가요?

계속 혼자 살다가 동생 (트와이스 정연)이랑 같이 산 지 6개월 정도 됐어요. 집순이 기질이 심해 일단 집에 들어가면 잘 안 나오고 연락도 잘 안 받아요. 근데 또 나가면 제일 잘 놀고, 또 집에 돌아오면 바로 눕고. 뭔지 아시죠?(웃음) 혼자 있을 땐 거의 누워서 넷플릭스만 보는데 누워만 있어도 행복해요.

재킷, 터틀넥, 귀고리 모두 가격미정 프라다.

트와이스 정연 씨와의 동거 생활은 어때요? 혼자 살다가 가족이랑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최근에 정연이 생일이라 선물 뭐 받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언니가 집을 나가줬으면 좋겠어”라고 했어요.(웃음) 이렇게 농담은 하지만 둘이 같이 있어 편한 게 많아요. 가사 분담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산 이후로 오히려 서로 대화가 줄어든 느낌이에요. 떨어져 살 때는 요즘 무슨 일 있는지 물어보고 더 구구절절 얘기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집 들어왔냐”, “야, 뭐 뭐 해놔”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해요. 찐가족이죠.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 카드사 상담원인 ‘진아’의 고객 중에 타임머신을 개발해 2002년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있었잖아요. 근데 그 이유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했던 월드컵이 그리워서였고요. 승연 씨는 타임 워프 할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저도 월드컵이 열린 그 시기에 좋았던 기억이 많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셰프인 아버지가 골프장에서 근무하셨는데 겨울이 되면 시설 운영을 안 하니 일을 쉬셨어요. 겨울에는 항상 집에 계셔서 맨날 밥도 해주시고 함께 실컷 놀았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죠.

월드컵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월드컵에 정말 푹 빠져 계시던 아빠 모습만 기억나요. 저는 어려서 축구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냥 가족들이랑 거리 응원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재밌었어요. 동생들이랑 저는 축구에 흥미가 없다 보니 집에 가고 싶다고 보챘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골이 터져 아빠가 정말 아쉬워했던 게 기억나요.(웃음)

‘진아’는 이별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 사람들과 관계를 끊은 채 사는 인물이에요. 그런 철벽 같은 ‘진아’에게 주위 사람들이 ‘틈’을 만들면서 여유가 생기고 변화해가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퇴사한 동료에게 “제대로 된 이별이 하고 싶다”라고 전화하던 장면이 인상 깊었죠. 우리 누구나 크고 작은 이별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승연 씨에게 가장 짙게 남아 있는 이별의 기억은 뭐예요?

첫 강아지와의 이별이요. 강아지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으로 보내놓고 촬영장에 갔어요. 촬영이 캔슬돼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전화를 받고 차 안에서 엄청 울었죠. 사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갔으면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거든요? 근데 그때 촬영하던 호텔 로비에서 빵을 구워 먹고 출발했던 거예요. 그 빵만 안 먹었으면 내가 그 아이 손이라도 한번 잡아줬을 텐데… 맛있어서 2개나 먹고 와서….

하나만 먹었어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데, 그때 그 아이의 마지막을 내가 못 지켰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아요. 지금도 호텔에서 조식 먹을 때 빵 구워 먹는 메뉴 있으면 그때가 생각나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승연 씨의 나무위키를 정독했거든요. 태몽부터 주량까지 10년 차 커리어에 걸맞게 온갖 정보가 있더라고요. 신인 시절 아나운서 지망생 역을 연기할 때, 실제 배역 이름으로 아나운서 학원에 다녀온 일화가 인상 깊었어요. 귀엽기도 하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뭔가 되게 잘하고 싶었거든요. 어차피 완전 신인일 때라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까, 아나운서 학원에 한번 갔다는 와봐야겠다 싶었어요. 모의 수업 같은 거 듣고 그랬죠.

그 밖에 연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봤다 하는 일화가 있어요?

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할 때 시장에서 일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거든요. 생선 손질도 직접 하는 캐릭터라, 집으로 고등어 100마리를 시켜 대가리 치고 해체하는 연습을 했어요. 냉동실에 온통 고등어뿐이라 한동안 계속 고등어만 먹었죠. 그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연기하는 데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크롭 재킷 1백58만원 팬츠 1백24만원, 스니커즈 71만원 모두 오프화이트. 모자 25만8천원 브라운햇.

시장 상인까지, 의외로 다양한 캐릭터를 했네요.

최근에는 구급대원 캐릭터를 준비하고 있어요. 구급대원 되는 법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고, 응급의학 서적도 사서 보고 있고요. 동생 정연이 팔에 고무줄 묶어놓고, 가짜로 주사 놓는 연습도 해요.

승연 씨의 메소드 연기 연습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군요.

분장팀에서 팔 더미를 얻어왔는데 고무라 빡빡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 팔에다가….(웃음) 〈소방서 옆 경찰서〉라는 드라마인데 아직 촬영은 시작 안 했어요. 대본 리딩하고 소방 교육, 구급 교육 받으며 지내고 있어요.

〈소방서 옆 경찰서〉는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기대가 돼요.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형식이라 새롭고 좋아요. 특히 저는 드라마 촬영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매회 많은 배우가 나오니 기뻐요. 저는 첫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빠르면 상반기에 방영될 것 같아요

2022년에 서른 살이 됐다고요. 수상 소감에서 “새로운 30대를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가요?

전 완전 부여해요. 옛날부터 ‘나는 30대에 정말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20대의 마지막에 큰 상을 받으면서 30대의 시작이 좋았던 만큼 연기 열심히 해서 더 빛났으면 좋겠어요.

배우 공승연 혹은 사람 유승연으로서 어떤 30대를 보냈으면 해요?

여유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고민이 많거나 어떤 일에 연연해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30대는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로웠으면 해요. 그냥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멋진 어른의 기준이 궁금해요.

작은 바람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내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 더 잘 챙기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요. 단단하고 혼자서도 잘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20대부터 늘 ‘나의 30대는 정말 예쁘고 빛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그럴 거예요.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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