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웃음 뒤의 상처..'의지'로 역경 이긴 '윌'

나윤석 기자 2022. 1. 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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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영화‘행복을 찾아서’촬영 현장에서 아들 제이든과 찍은 사진. RHK 제공

■ 윌 | 윌 스미스·마크 맨슨 지음, 김나연 옮김 | RHK

세계적 스타 윌 스미스 자서전

어린시절 父 폭력에 트라우마

‘아버지 기쁘게해야 가족 안전’

웃긴 사람이 돼야한다고 생각

“승리에 중독돼 계속 달렸지만

멈춤과 휴식의 강력함 깨달아”

“9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봤다. 어머니는 입안이 터져 피를 뱉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맞서지 못했고, 어머니를 실망시켰다. 이후 내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와 ‘사람들에게 준 웃음’은 그날 어머니를 위해 나서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사과다.”

재기 넘치는 래퍼이자 할리우드의 ‘유쾌한 악동’ 윌 스미스가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과 공동 집필한 ‘윌(Will)’은 해맑은 미소에 감춰진 상처를 응시한 회고록이다. 가정폭력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연예인의 길부터 강인한 의지로 할리우드 최고 스타가 된 과정, 경력의 최정점에서 삶을 통째로 복습한 계기 등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군인 출신 사업가였던 스미스의 아버지는 전쟁터의 소대를 지휘하듯 가족을 다뤘다. 어머니와 충돌할 때면 어김없이 손이 올라갔고, 아들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면 혁대로 엉덩이를 때렸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폭력은 스미스가 희대의 ‘엔터테이너’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어린 스미스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선 ‘웃긴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버지를 기쁘게 만들면 가족 모두 안전할 수 있었으니까. “두려움은 주변 상황을 눈치로 감지하는 예민함을 발달시켰다. ‘완벽한 가족’을 다룬 시트콤에서 위안을 얻으며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선택’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척 항상 웃으며 농담을 했다. (래퍼와 연기자가 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집안의 연예인이었다.” 훗날 긴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외계인을 쫓고(‘맨 인 블랙’), 허허실실 웃으며 마약 범죄를 소탕(‘나쁜 녀석들’)한 스미스의 인물들은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심히 갈고닦은 캐릭터”였다.

그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개인사를 고백한 책이 아버지를 향한 증오만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한때는 언젠가 어머니를 대신해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늘 아들을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버지는 모든 공연과 연극, 영화 시사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란 많은 친구를 봤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악마성을 극복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어도 내 안의 악마와 맞서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미움이 뒤섞인 이 서늘한 성장 서사는 찬란한 성공담조차 ‘불안’을 이겨낸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미스는 이름처럼 강력한 ‘의지(will)’로 난관을 돌파해갔다. 힙합 그룹 멤버 간 불화와 해이해진 기강으로 세 번째 앨범이 실패하자 ‘연기’에서 새 길을 찾았다. 드라마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로 TV를 점령한 뒤엔 할리우드로 넘어갔다. “나무 넝쿨을 놓는 순간 다음 넝쿨을 붙잡는” 타잔처럼 공백 없이 행동반경을 넓혔고, 아버지에게 배운 규율을 바탕으로 휴가 한 번 가지 않고 인생을 ‘복싱 캠프’처럼 운영했다. 할리우드에 안착하기 위해 “최고 스타인 톰 크루즈가 영화 개봉 후 글로벌 홍보에 투입하는 시간보다 무조건 ‘두 시간을 더 할애한다’는 원칙”을 세울 정도였다. 이런 엄격한 자기 관리를 통해 ‘나쁜 녀석들’ ‘인디펜던스 데이’ ‘맨 인 블랙’ ‘알리’ ‘히치’ ‘행복을 찾아서’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배우에 등극했다. “연기는 예술적 충동을 분출하는 캠버스였다. 음악을 만드는 게 ‘좋은 동네’에 사는 기분이었다면, 연기는 ‘무한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미스가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 것은 경력의 최정점에 도달한 직후였다. 앞만 보고 내달리며 ‘주연작 8편 연속 박스오피스 1억 달러 돌파, 3000만 장 레코드 판매, 4번의 그래미상 수상’ 같은 타이틀을 거머쥐는 사이 사랑하는 아내·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이혼을 겪은 스미스는 또 가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에 그는 난생처음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진정한 행복을 곱씹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했다. “나는 인정과 승리에 중독돼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늘 웃는 얼굴만 보여주느라 싫을 때 싫다고 말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멈추는 건 가는 것만큼, 휴식은 훈련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잠시 지는 것은 성장을 위해 이기는 일이라는 것을.”

2007년 개봉한 ‘행복을 찾아서’는 스미스와 그의 아들 제이든이 극 중 ‘부자(父子)’로 출연한 영화다. 스미스가 연기한 크리스 가드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해내지 못할 거란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돼. 원하는 게 있으면 가서 쟁취해. 중요한 건 그게 다야.” 하지만 스미스는 아픔과 영광이 교차한 세월을 통과하며 ‘중요한 건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걸 쟁취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아마 행복에 한 뼘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전해주는 웃음엔 전보다 깊고 진한 페이소스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580쪽, 2만2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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