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이라는 기적을 향하여

한겨레 2022. 1. 2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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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기이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바라는 일이 신기하게도 이루어진다는 긍정의 의미가 담겼다.

그러기에 일상적으로 기적이라고 말할 때는 되레 덧없이 들리기도 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룬 일을 기적의 영역에 넣어버리거나, 이를 신의 섭리로 치부하며 제멋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미라클 크리크> 는 제목과 달리 기적이 일어나는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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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한겨레Book]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지음, 이동교 옮김 l 문학동네(2021)

‘기적’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기이하다는 뜻만이 아니라, 바라는 일이 신기하게도 이루어진다는 긍정의 의미가 담겼다. 보통 쉽사리 일어날 리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은총이 내리는 사건. 그러기에 일상적으로 기적이라고 말할 때는 되레 덧없이 들리기도 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룬 일을 기적의 영역에 넣어버리거나, 이를 신의 섭리로 치부하며 제멋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혹은 닿을 수 없는 희망이라는 안타까움도 여기에 내포되었다.

<미라클 크리크>에서 쓰인 ‘미라클’, 기적이라는 단어도 궁색한 울림을 지닌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마을 미라클 크리크, 한국인 이민자 박 유와 아내 영이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인 미라클 서브마린에서 화재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당시 고압산소 체임버 안에 있던 사람 중 두 명이 사망했다. 자폐성 장애 아동인 헨리와 다른 자폐 아동의 어머니였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영원히 남을 상처를 얻었다. 그리고 1년 후, 헨리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방화 사고의 용의자로 재판을 받는다.

작가인 앤지 김은 열한 살에 미국에 이민을 갔다.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소위 명문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좋은 예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아메리칸 드림이 은총이 아니고, 거기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이민자 2세대 시인 캐시 박 홍이 에세이집 <마이너 필링스>에서 묘사한 미국 내 소수 인종, 이민자로서의 감각이 <미라클 크리크>에도 짙게 배었다. 모범적 이민자로 살려 했던 영의 가족이 미국에서 꿈꾸었던 기적은 비극적 사건이라는 결과를 낳고 만다. 박은 휠체어를 타고, 박과 영의 딸 메리는 평범한 십 대로 살아갈 수 없다.

좌절된 기적이라는 모티브는 헨리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에게도 있다. 아이를 죽인 살인자라고 지목당한 엘리자베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이 감정은 새롭지 않다. 아이가 보통보다 느린 발달을 보일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어머니가 있겠는가? 법정 미스터리인 이 소설이 피고인석에 올리는 것은 ‘어머니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이다. 엘리자베스는 온갖 식이요법과 치료를 찾아다녔고 헨리의 상태는 호전된다. 다른 엄마들에게 헨리는 기적의 아이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기적을 엘리자베스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헨리를 보통의 ‘정상’ 아이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꾸준한 강박에 사로잡혔다. 이를 엘리자베스의 죄라 할 수 있을까?

<미라클 크리크>는 제목과 달리 기적이 일어나는 소설이 아니다. 모두가 비밀을 털어놓고 사건의 전모를 밝혀도 엘리자베스가 헨리를 안고 다시 웃는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우연이 겹쳐 재난이 되고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새로이 나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 인간의 의지가 있고, 우리는 괴로워도 다시 쌓아갈 것이다. 재난 전에 꿈꾸었던 미래와 같은 형태는 아니라도, 새로운 형태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후대의 사람들은 이 재건을 기적이라고 부르리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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