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의 대선후보 가족 검증
지난 2020년 가을 미국 대선의 첫 TV 토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당신 아들 이야기 좀 해보자”면서 공세를 시작했다. 바이든의 차남 헌터가 바이든이 미 부통령일 때 우크라이나 가스 회사 이사로 취업해 고액 연봉을 받고, 바이든은 아들이 소속된 회사를 수사하려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손보려 했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재수사하라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종용하다 2차 탄핵소추까지 당했던 트럼프에게 헌터 문제는 ‘그냥 남의 아들’ 문제가 아니었다.
트럼프에게 어떤 공격을 받아도 여유 있게 웃어넘기던 바이든의 동공이 흔들리며 얼굴이 슬픔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그 애는 잘못한 게 없어! 위법한 일 안 했다고! 이건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가족은 끌어들이지 맙시다.” 중계하던 평론가들은 바이든이 “트럼프의 딸 이방카도 아버지의 직위를 이용해 공직에 나가 사업 이권을 얻었다”고 역공하는 초유의 막장 토론이 될지 주시했지만, 자식 싸움은 그쯤에서 멈췄다.
그해 대선은 미 역사상 가장 분열되고 더러운 선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금도는 있었다. 후보 본인이 아닌 가족의 잡다한 비리나 전력이 주요 이슈가 된 적이 결코 없었다. 공화당은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답하지 않고 숨자 “헌터는 어디 있나?”라며 공격했지만, 헌터가 형이 죽은 후 형수와 수년간 동거했다거나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생활을 꺼내들진 않았다. 자식의 실패는 부모의 죄요, 집안 문제가 정치인 생명을 끝낼 수도 있다는 한국적 사고와는 크게 다르다.
‘배우자 리스크’도 양쪽 모두에 있었다. 바이든과 부인 질 바이든의 첫 만남이 불륜 아니었냐는 의혹이 있었다. 질 여사의 전남편이 “질은 바이든과 우연히 소개팅을 한 게 아니라, 내 아내일 때 상원의원인 바이든 캠프에서 일하다 눈이 맞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멜라니아 트럼프 역시 슬로베니아 이민자로 변변치 못한 모델로 일하다 트럼프의 ‘트로피 와이프’가 됐지만 뉴욕 상류층 사회에서 겉돌았다는 스토리로 고통받았다. 이런 뉴스들 역시 일부 극단적 매체에서나 떠돌던 이야기일 뿐이었다. 만약 어느 정당이나 주요 언론이 퍼스트레이디 후보의 ‘야심’을 문제 삼아, 남편을 통한 신분 상승에 현미경을 들이댔다간 미국 사회에서 엄청난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미국엔 대통령 후보 가족을 어느 선까지 파헤칠 수 있느냐에 대해 암묵적이지만 분명한 룰이 있다. 첫째, 대통령 직무 수행에 가족이 개입해 사적 이득을 취한 명백한 ‘이해 충돌’이 있느냐, 둘째는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이 내세운 철학에 위배되는 ‘가치 충돌’이 있느냐다. 이 범위를 벗어난 무분별한 가족 파헤치기는 나라의 미래와 관련 없는 소모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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