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9] 시간을 넘어선 씨앗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2. 1. 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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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이야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사진은 오래전부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추구했다. 사진술의 발명 이후 카메라가 눈보다 선명하고 세밀하게 대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되기까지 불과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기계를 이용해서 더 많은 시각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의 만남은 언제나 놀랍다.

세계 유일의 야생식물 종자 영구 저장고인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 볼트’는 전 세계의 종자 4084종 9만2681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연구원들은 미세 조직을 3차원으로 관찰할 수 있는 주사전자현미경(SEM)을 이용해서 보유 종자의 표면을 촬영했다. 최대 30만배까지 확대가 가능하다는 기계의 눈은 경이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가늘고 규칙적으로 뻗어 난 솜털과도 같은 무늬, 기하학적인 형태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패턴, 다른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표면 재질감은 들여다볼수록 매력 있다.

쑥부쟁이, 금계국, 석류풀, 세뿔투구꽃, 패랭이꽃, 닭의장풀, 짚신나물…. 이 사진 속 씨앗들이 나중에 발아하면 정체를 드러낼 식물의 이름이다. 씨앗과 식물은 시간 속에서 하나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가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현미경 사진에 입혀진 색은 후에 이 씨앗들이 발아하고 꽃 피고 열매 맺을 때에 보여줄 색을 따랐다. 사진 속에서 씨앗들은 생장 주기의 모든 색을 부여받아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게 되었다. 마치 식물의 생명력을 한 장의 사진에 압축한 듯, 씨앗의 형태와 색은 공간을 파고들고 시간을 넘어 신비롭게 완성되었다.

볼 수 없는 걸 보게 만드는 게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다. 세상에 볼거리가 많아질수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을 보게 될수록, 신기하게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닫게 된다.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작은 씨앗에서 무얼 보게 될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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