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8] 명군의 조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2. 1.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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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군으로 세종대왕이 있다면 도쿠가와 막부 일본에는 8대 쇼군 요시무네(吉宗·1684~1751)가 있다. 요시무네는 막부의 재정 건전화, 신전(新田) 개간, 관료제 개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호(亨保) 개혁’의 시정(施政)으로 유명하다. 후세가 꼽는 세종의 으뜸 치적이 한글 창제라면,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요시무네의 치적으로는 금서령(禁書令) 완화를 들 수 있다.

금서령이란 1630년부터 시행한 기독교 관련 한역(漢譯) 서양서 반입 금지령을 말한다. 당시 나가사키에는 중국 무역선들이 중국 서적을 유입시키고 있었으나, 서양 선교사가 편찬한 천문·지리·수학·측량 등 과학기술 서양서는 기독교 교리서와 합본된 총서(叢書)로 간행되어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 요시무네는 1720년 기존 금서 목록에서 과학기술 서적을 제외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 서구의 신지식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한다. 학자들은 이때의 금서 완화 조치를 난학(蘭學)의 맹아로 평가한다.

요시무네는 서양 사정과 역법(曆法)에 관심이 많았던 호학(好學)·경세(經世) 군주였다. 1740년 요시무네의 명에 따라 시의(侍醫) 노로 겐조가 네덜란드 원서를 발췌하여 작성한 동식물 도감과 본초학 번역본은 난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본초학은 약재 제조 등에 활용되어 식물의 상업적 이용을 촉진하는 실용 학문의 꽃이다. 금서 완화는 단순히 지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나라의 부강(富强)에 도움이 되는 신지식을 얻으려는 통치책의 하나이기도 했다.

금서령 완화 이후 태동한 난학은 일본 지식계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었고, 이러한 지적 조류는 엘리트 계층이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눈앞에 밀어닥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직시하는 인식적 토대가 되었다. 새로운 지적 자극에 열려 있고 그를 국익과 연결하는 안목이 유능한 통치자의 조건임을 조선과 일본의 근세를 대표하는 세종과 요시무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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