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옥수수의 변신은 무죄
[경향신문]
옥수수의 고향은 아메리카이다. 북부 안데스 또는 멕시코 일대를 그 원산지로 추정한다. 옥수수는 오늘날 밀, 벼와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에 드는 귀중한 자원이다. 사람도 먹지만, 절반 이상이 온 지구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그만큼 잘 자라는 작물이란 말이다.
옥수수는 조선 후기에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 조선의 문헌에는 옥미(玉米), 옥촉서(玉蜀黍), 옥수수미(玉穗穗米) 등으로 기록되었고 해방 이후 ‘옥수수’가 자리를 잡는다. 1690년 간행된 한조(漢朝) 대역 어휘집 <역어유해(譯語類解)>는 ‘玉薥薥(옥촉촉)’을 표제어로 잡고 한어음은 ‘유슈슈’로, 조선어음은 ‘옥슈슈’로 달았다. 1776년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는 ‘옥촉서(玉薥黍, 옥슈슈)’를 표제어로 하고 “(옥수수는) 다섯 가지 빛깔이 있다. 봄에 비옥한 땅에 심고 (…) 쪄서 먹을 수 있으며, 죽을 만들어 먹으면 더욱 좋아서 율무보다 낫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조선 의주와 중국 북경 사이의 벌판에 수수 또는 옥수수가 빽빽이 들어서 장관을 이루었다. 그러니 중국을 다녀온 조선 사람의 기행문 속에서 옥수수 이야기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추위가 심하면 몸도 녹일 겸, 벌판의 가게에 들어가 옥수수국수를 사 먹는 장면도 보인다.
한마디로 옥수수는,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작물 가운데 일찌감치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에 띄어, 일찌감치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작물이다. 그 탄수화물과 전분 덕분이었다. 옥수수국수, 옥수수떡, 옥수수밥은 쌀밥, 보리밥, 조밥 못잖은 한 끼가 돼주었다.
강원도 산간과 그 북쪽 일대에서 이어지고 있는 올챙이국수 또는 올챙이묵을 살펴보자. 바가지에 젓가락 굵기의 구멍을 내고, 옥수수 앙금으로 쑨 풀을 구멍을 통해 찬물에 흘러내리면 올챙이 모양으로 짧은 가닥이 진다. 이 가닥을 살려 호로록 넘어가도록 해 먹으면 올챙이국수이고, 가닥을 건져 틀에 굳히거나 수분을 날려 뭉치면 올챙이묵이다. 올챙이국수나 올챙이묵은 김치나 동치미와도 잘 어울리고 깻국, 김칫국, 장국과도 잘 어울리는 별미이다. 하나 지금이나 그렇다는 소리다. 배고픈 시절의 옥수수 음식은, 먹으면서도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밥이나 조밥이 그리워 눈물 나게 하던 음식이었다. 이제 한국의 옥수수에서 눈물이 지워진 지는 오래다.
1970년대까지 시골, 산골 옥수수 농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끼니가 되는 메옥수수는 오늘날 더이상 보기 힘들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옥수수는 더욱 달고 차진 찰옥수수 일색으로, 오로지 간식용으로 변했다. 그러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전에 없던 ‘북한식’ 또는 중국 ‘동북식’의 옥수수국수가 나타났다. 이 옥수수국수가 복잡한 배경의 이주민과 함께 들어와 새로이 퍼진 음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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