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Me Escape
[경향신문]
정윤순의 사진은 너무나 절실한 울림이 있어서 무언가 꼭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6개월여를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매년 몇 개월씩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병원이란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고 있으니 유배나 수감생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환자에게는 격리생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20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교통사고 이전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담는 사진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그 지긋지긋한 병원 침대를 홍수 뒤의 서해바다로 끌고 나온 것이다. 끌고 나온 것은 침대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까지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Me, Escape’는 ‘나는 탈출하고 싶다’일까, ‘나로부터 탈출하고 싶다’일까.
어렸을 때 물에 빠져 간신히 살아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수영을 못한다는 그가 거친 물결의 바다에서 돛대도 삿대도 없는 침대 위에 올라 절실하게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그 유명한 햄릿의 대사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극한의 고통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정윤순의 사진은 모든 극적인 조건을 갖추었다.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도 그의 사진에는 위트가 숨겨져 있다. 그 절실한 몸부림과 ‘탈출’의 동반자로서 애완견을 출현시키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링거를 몸에 매달고 있다. 그의 몸짓은 무인도에서 쏘아 올리는 조명탄처럼 삶의 의지로 가득하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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