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허락받지 않은 '행정 외주'

한겨레 2022. 1. 2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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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21년 12월27일 서울 강남의 어느 카페, 나는 쿠브 앱을 열며 들어섰다. 미국에서 맞은 백신 접종 기록을 보건소에 등록했기에 이제 아무나 볼 수 있는 명부에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스캐너에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결과는 ‘스캔 불가!’ 주인은 어서 네이버나 카카오 큐아르코드를 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누구나 쥐고 썼던 볼펜을 들어 수많은 전화번호 아래 내 번호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5년 넘게 잠자던 네이버 계정을 깨웠다. 네이버 앱을 세번째 화면으로 밀어 넣는 차별을 하며, 더 이상은 새로 만들 상상력조차 고갈된 14자리 비밀번호도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도대체 네이버와 카카오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언제 어떻게 국가 기관이 되었는가?

휴대전화를 변경할 때마다 통신회사 민영화가 주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과연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고용불안에 물들어 있을 직원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하는가. 많은 어르신이 아쉬울 때마다 약국 들르듯 휴대전화 매장을 찾는다. 개인정보에 비밀번호까지 내주며 그곳의 직원을 과거 전화국 공무원 대하듯 의지하는데, 이래도 괜찮은 건지…. 선의에 맡겨진 정보통신국가이다.

50대 중반인 두 친구는 박수근전을 보고자 들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는 전시안내 사이트 문구와 달리 현장에서는 인터넷만을 허용했다. 입장료 2천원을 내기 위해 그 둘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떨군 채 혼잣말인지 사이트에 적힌 문장에 답하는 대답일지 모를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손가락을 놀렸다. 그러다 고궁 산책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마 기계에 복종하고자 쩔쩔매면서도 거듭 실패하는 쓸쓸함을 더는 지속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쓸쓸함은 나이가 많을수록 무력감으로 변하고 자칫 ‘우울감’으로 빠지기도 한다. 60살 지인은 팔순 노모 곁을 지키고자 서울에 방을 구하고 있다. 그이의 노모는 5년 전만 해도 남편 병원 수속과 치료 일정을 도맡아 처리했는데, 지금은 진료실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으로 진행되는 검사 전 절차들이 걷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임을 주지시켰다. 자식에게 의존하는 아이가 됐다는 생각에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84살 우리 어머니도 삼성카드를 해지하려고 카드 만들기를 강권했던 대형마트로 버스를 타고 갔는데 카드회사 사무실은 사라지고 인터넷에서 취소하라는 말만 반복하여 들었다. 그 허무가 만든 휘청거림이었을까? 어머니는 30년 가까이 다니던 사거리가 낯설어 잠시 어리둥절했다고 고백했다. 걸어서 혹은 마을버스라도 타고 가서 볼일 보던 세상이 사라지고 있다.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미국 보스턴 시청 앞에 있는 공공주차장은 이용료를 내려면 앱을 깔아야 한다. 고작 1달러40센트가 나왔어도 개인 정보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있는 연락처와 사진에까지 접근하도록 다 내줘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노인들은 운전할 수 있다 해도 자동화 허들에 걸려 시내에는 얼씬하기 어려운 시절이 됐다.

코로나 속에서 가속화된 자동화 물결이다. 그렇다면 이 물결을 일으키는 동력은 ‘방역’이라는 공공의 이익일까? ‘아.니.다.’ 스타카토로 끊어서 답하고 싶다. 인건비와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리려는 매우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세력이 몰아치는 파고다.

2019년 여름, 한 무리의 여성 노동자들이 서울 톨게이트에 올랐다. 그들은 1500명에 이르는 집단 해고를 되돌리고자 저항했다. 2022년 겨울, 더 많아진 하이패스를 통과하는 다수는 누가 싸움의 주체인지 알 수조차 없는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회오리 속에 있다. 4차 산업 속 성장을 부르짖지만 현실은 매우 구체적인 불평등으로 덮쳐온다. 이는 소비자의 권리와 공공서비스를 약탈하는 파괴이며 도돌이표처럼 노동 시장 흔들기로 쏠려간다. ‘허락받지 않은 행정 외주’이자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우울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정부의 태업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붕괴될 때 사람들은 자살을 결심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믿고 의지했던 규범들이 무너지고, 자신의 가치가 추락할 때 삶의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다. 돈으로 환산해야 다급히 나서는 시절이니 정부는 우울이 만들 내일의 비용이라도 부디 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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