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관이 죽었어요" 화마가 삼킨 아이들의 꿈

이삭 기자 2022. 1. 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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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주시 소나무작은도서관
지난해 12월 화재로 잿더미
책 5000여권·악기 등 전소
복구비 마련 막막해 발 동동

박혜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장이 지난달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소나무작은도서관 내부를 지난 19일 둘러보고 있다. 이삭 기자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작은도서관). 지난해 12월9일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타 버린 이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적막감이 맴돌았다. 화재 진화를 위해 강제로 뜯겨져 휘어진 출입문은 화재 당시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메캐한 냄새가 풍겼다. 곳곳에 그을음이 가득했다.

“한 달여 전만 해도 아이들이 뛰어놀며 공부하던 곳인데….” 지난 19일 화재 현장을 둘러보던 박혜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센터장이 이 도서관을 만든 것은 2017년이다. 소나무지역아동센터(지역아동센터)와 35m 정도 떨어진 건물 3층에 있는 116㎡ 크기의 가정집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박 센터장은 이곳을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활용해 왔다. 박 센터장은 대학교 시간강사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을 작은도서관 운영비로 충당해 왔다.

박 센터장은 “빈부격차 없이 모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꿈을 품고서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에는 한부모, 차상위계층, 맞벌이 가정 자녀 29명이 돌봄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화재 전까지만 해도 작은도서관에서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실내 스포츠,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수업을 받아왔다. 시인, 수필가, 작가 등 10여명이 모여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화재는 이곳에 있던 5000여권의 책과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작품, 악기 등을 모두 까맣게 태워버렸다.

화재로 작은도서관 66㎡가 불에 타고 28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작은도서관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도서관이 죽었어요”라며 안타까워 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지난 19일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소나무지역아동센터에서 비좁게 수업을 받고 있다.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제공.

A군(11)은 “도서관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공부를 했었다”며 “도서관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B군(13)도 “미술수업 때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 도서관에 뒀는데 불이 나 다신 그림을 볼 수 없게 됐다”며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인데 불에 타 속상하다. 다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도서관을 복구하는 데에는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책과 각종 집기 등이 온통 잿더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작은도서관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7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박 센터장의 의견이다.

현재 작은도서관은 검게 그을린 상태로 남아 있다. 돌봄을 받고 있는 29명의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 센터장은 “밀집된 곳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있어 일부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운동수업을 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작은도서관의 재개관을 위해 지역사회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충북보건과학대 총학생회는 재학생과 교직원들을 상대로 바자회를 열어 105만원 정도의 성금을 모아 박 센터장에게 전달했다. 이 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매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김준성 충북보건과학대 총학생회장은 “작은도서관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바자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청주시새마을회도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박 센터장은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며 “공사가 지연될수록 도서관 재개관도 늦어져 아쉬운 상황이다. 아이들이 빨리 예전처럼 도서관에서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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