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북한' 관심 안두자..김정은, '핵 카드' 빼들고 인정투쟁?

이제훈 2022. 1. 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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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 핵·ICBM 카드 다시 꺼낸 북한, 왜?
핵실험 '검토' 지시로 협상여지 남긴 채 미국에 공넘겨
중 올림픽 고려 '김일성 생일' 4월15일 전후 행동 가능성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주재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대미국 “신뢰구축 조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지시)했다”고 <노동신문>이 20일 1면 전체에 펼쳐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핵시험,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일시유예)’ 조처를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경제·핵 병진노선 종료’와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 집중’ 전략노선을 채택한 2018년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를 선언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싱가포르 정상회담(2018년 6월12일)에서 ‘핵·아이시비엠 모라토리엄’을 약속한 지 3년9개월 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한돌(1월20일)에 맞춰 내놓은, 대미 정책의 무게중심을 ‘협상 모색’에서 ‘맞대결’ 쪽으로 다시 옮길 수 있다는 ‘경고’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3년 가까이 지속해온 한반도 정세의 교착 국면을 더는 견딜 수 없으니 적극적 협상이든 대결·충돌이든 미국이 선택하라는 대미 신호다. 장기화하는 ‘제재·코로나19·경제난’ 탓에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으며 활로를 모색하려는 포석이기도 하다. 한반도 정세가 중대 고빗길에 들어섰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반응인데, 정작 바이든 대통령은 111분에 걸친 취임 한돌 기념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전 수준의 극단적 정파 갈등, 코로나19 오미크론 대유행,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위기 등 안팎의 난제에 휩싸인 워싱턴에서 ‘북한’은 우선 관심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역설적으로, 김 총비서가 ‘핵·아이시비엠’ 카드를 45개월 만에 공개적으로 흔들며 ‘대미 인정투쟁’에 다시 나선 까닭이다.

다만 김 총비서가 19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 8기 6차 정치국 회의와 관련한 <노동신문> 20일치 1면 보도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즉각적인 핵시험이나 아이시비엠 시험발사 예고를 한 것은 아니다. 정치국이 “대미 대응 방향을 토의”해 “신뢰구축 조치 전면 재고”와 “잠정중지했던 모든 활동 재가동”을 ‘결정’한 게 아니라, 그런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지시)했다”는 것이다. 핵시험, 아이시비엠 발사와 같은 전략적 군사행동을 미국에 ‘경고’하되 ‘경로 변경’ 가능성도 함께 열어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상응 조처’를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북한 체제 특성상 김 총비서의 ‘결단’을 명분으로 ‘비핵화 협상’으로 선회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주재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대미국 “신뢰구축 조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지시)했다”고 <노동신문>이 20일 1면 전체에 펼쳐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북에서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4월15일)과 “광명성절”(2월16일)로 불리는데, 북쪽은 이때에 맞춰 핵시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전례가 있다. 3차 핵시험은 광명성절을 나흘 앞둔 2013년 2월12일에 있었다. 김정은 체제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가 된 장거리 탄도미사일 ‘광명성 2호’(2009년 4월5일)와 ‘광명성 3호’(2012년 4월13일) 발사는 태양절에 임박해 이뤄졌다.

북쪽이 실제 핵시험, 아이시비엠 시험발사와 같은 전략적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베이징겨울올림픽(2월4~20일)과 겹치는 광명성절보다 태양절에 맞출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울러 ‘대미 대응’과 ‘경축’을 겸한다면, 핵시험보다는 평화적 우주 이용 명분을 앞세운 ‘인공위성 발사’ 형식의 대륙간탄도로켓이 선택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렇게 보면 북쪽이 제시한 1차 시한은 ‘태양절’일 수 있다. 여러명의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쪽이 “당분간 각종 담화와 다양한 중저강도의 군사행동으로 미국을 압박하다, 태도 변화가 없으면 태양절 즈음에 위성 발사로 포장해 아이시비엠을 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직 통일부 장관은 “안팎의 난제에 직면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없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주한미군 전진 배치와 전력 증강의 빌미가 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며 “김 총비서의 불만과 어려움을 모르지 않지만 자제와 지혜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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