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시계' 4년 전으로 돌리겠다는 북한
[경향신문]
당 정치국 “신뢰구축 조치 전면 재고”…핵실험·ICBM 발사 재개 시사
올 4차례 무력실험에도 미국의 대북 태도 변화없자 ‘강대강’ 전략 회귀
북한이 3년9개월간 유지해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출범 1주년인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북 태도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북한이 수위를 높여 ‘강대강’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고 북·미관계가 2018년 6월 싱가포르 선언 이전의 ‘시계제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한반도 주변 정세와 국제 문제들에 대한 분석 보고를 청취하고 대미 대응 방향을 토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사진)도 참석했다.
통신은 회의에서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지시)했다”고 전했다. 신뢰구축 조치는 북한이 2018년 4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뜻한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위주의 북한 무력시위가 ICBM 수준으로 강도를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은 새해 들어 4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현 상황과 관련, “정치국은 싱가포르 조·미(북·미) 수뇌회담 이후 우리가 정세 완화의 대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성의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미국의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대조선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했다”고도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된 대미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발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조건 없는 대화’ ‘외교적 해법’을 대북정책으로 내세웠고, 이어 지난해 6월 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 있다”면서 대화 여지를 열어뒀다. 그러나 미국은 구체적 대화 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독자 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 요청으로 압박을 이어왔다. 결국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 북한이 모라토리엄 철회를 경고한 것이다. 향후 수위를 점진적으로 높여가면서 대미 강대강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밝힌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5개년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선 걸림돌로 작용하는 기존 모라토리엄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5개년 계획 중 핵심 5대 과업인 극초음속 미사일, ICBM 능력 제고, 다탄두개별유도기술 제고, 핵잠수함 및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개발, 군 정찰위성 운용의 대부분은 기존 모라토리엄을 파기해야 가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제8차 당대회 이후 전략무기 개발목록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빠른 속도로 개발 실험을 구체화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핵무기의 불가역적 완성을 통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으로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대내 경축일인 김정일 생일(2월16일·광명성절)과 김일성 생일(4월15일·태양절) 등을 계기로 존재감 과시에 나설 수 있다. 이날 정치국 회의에선 “올해 태양절과 광명성절을 가장 경사스럽게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기념일에 맞춰 열병식을 준비하는 정황이 있다고 이날 밝혔다. 북한이 열병식에서 ICBM 등을 대거 동원해 무력을 과시할 수 있다. 오는 4월쯤으로 예상되는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이 북한의 추가 무력시위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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