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토대 붕괴 직면
[경향신문]
북한이 핵·ICBM 유예 깨면
남북 대화 재개에 공들여온
문재인 정부 보루도 무너져
청 “일련의 동향 면밀 주시”
북한이 20일 ‘대미 신뢰조치’를 재고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이다. 북한 문제를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북한의 이날 발표는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외교 성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말하는 대미 신뢰조치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북한은 실제로 지금까지 3년9개월 동안 핵실험과 ICBM 발사를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수 있는 토대이자 북한이 대화로 돌아올 의지를 갖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성과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안인 동시에 대화 재개를 기대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이었다.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도 북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뒤 돌아오는 길에 “(북한이) 지난번에 미사일을 발사하기는 했지만 원래 약속했던 핵실험이나 ICBM 발사시험의 모라토리엄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아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종전선언 수용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또한 북한의 거듭된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에도 많은 정부 인사들은 ICBM 발사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북한이 여전히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의 핵·ICBM 유예는 북·미가 합의한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취한 조치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거둬들인다고 해도 약속 위반은 아니다. 또 북한의 유예 선언이나 유예 재고 발표는 모두 북한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ICBM 발사를 재개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의 전략무기 현대화 작업에 사정거리 1만5000㎞의 ICBM 정확도 향상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꺼낼 카드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인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정부는 북한의 이번 발표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최근 북한 일련의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상황 전개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국들과 면밀하게 협의해나가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앞으로도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진전시켜나간다는 원칙을 위해 한반도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미국 등 관련국들과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이집트 일간지 ‘알 아흐람’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해 “현 상황에서 평화구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평화로 가는 길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제도화’는 종전선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가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대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평화는 강하게 염원할 때 이뤄진다. 앞으로도 평화구축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며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위한 정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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