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순환 주도하며 지구상 모든 삶을 부양하는 '작은 존재'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27)]

김응빈 교수 입력 2022. 1. 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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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2021년 12월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향후 10년(2023~2032년)에 걸쳐 약 1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분야는 지난 20여년 동안 빠르게 발전해왔다. 특히 인간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 나아가 치료에까지 잠재적 응용성이 날로 커지면서, 이제는 관련 분야 연구자는 물론이고 대중도 큰 관심을 두는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무엇인가?

나만 그런지 몰라도 이상하게 ‘○○이란 무엇인가’로 끝나면 해당 질문이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걸 명쾌하게 정의하기 쉽지 않다면 그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래서 먼저 정확한 정의를 알아보는 것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마이크로바이옴, 그 이름의 탄생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마이크로바이오타+게놈’ 합성
특정 서식지에 사는 미생물을
총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유전자 분석 통해 구성원 파악

흔히 대중매체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게놈(genome)’을 합친 합성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전자는 미생물 무리를, 후자는 한 생명체가 지니는 모든 유전정보를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나름 간단명료해 보이는 정의다. 하지만 함축하는 의미가 생각보다 깊다.

‘바이오타(biota)’란, 정해진 지역에 분포하는 모든 생물을 일컫는다. ‘생물상’으로 번역하는 이 용어가 만들어진 1901년 당시에는 동물상과 식물상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16년, 일반적인 생물 무리가 아니라 특정 조건에 따라 구분되는 동식물을 총칭하는 ‘바이옴(biome)’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를테면 바이옴은 열대우림, 툰드라, 사막 따위처럼 주로 기후 조건으로 구분되는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동식물을 아우른다. 참고로 우리말로는 바이옴을 ‘생물군계’라고 한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생물학 연구자 대부분에게 미생물은 생명체이기 전에 병원체로 다가왔다. 미생물은 동식물처럼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박멸 대상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서 발전해온 학문이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탄소와 질소를 비롯하여 생명체의 구성과 생존에 필요한 원소는 자연계에 풍부하지만, 항상 생명체가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미생물이 이들 원소를 식물과 동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주는 핵심 역할을 한다. 예컨대, 미생물은 쓰레기와 동식물 사체 따위를 분해하여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돌려보냄으로써 광합성을 가능케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 가스도 특정 미생물 덕분에 천연 질소 비료로 거듭난다. 지구 차원에서 보면 물질이 생물과 환경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물질순환’이다. 한마디로 미생물은 물질순환을 주도하여 지구상의 모든 삶을 부양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의 참모습과 그 중요성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특정 서식지에 사는 미생물을 총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용어다. 공식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2년의 일이다. ‘바이오타’가 아니라 ‘바이옴’ 앞에 ‘작은’을 뜻하는 접두사 ‘마이크로(micro)’를 붙인 것은 특정 조건 또는 환경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마이크로바이옴 파헤치기

1988년, 식물 뿌리 주변에 사는 미생물의 생태를 연구하던 연구진이 마이크로바이옴에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그 의미를 확장 발전시켰다. 말하자면,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원들(마이크로바이오타) 사이, 그리고 이들과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추가한 것이다. 21세기로 접어들어 유전체 분석이 보편화하면서 해당 환경에 사는 미생물 유전자의 조성과 발현 양상 조사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의 하나로 ‘마이크로바이옴=마이크로바이오타+게놈’이라는 등식이 생겨났다.

1992년 시인 정현종은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라고 시작하여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오는 탄력이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힘’이라고 읊었다.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의 핵심 개념을 ‘한 숟가락 흙 속에’라는 시로 승화시킨 시인의 통찰력에 감탄한다. 실제로 곳곳에 온통 미생물이다. 하지만 이 많은 미생물 가운데 전통적인 기술로 키울 수 있는 것은 고작 1% 남짓이다. 이는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다행히 1998년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를 찾았다. 배양을 거치지 않고 시료에서 직접 DNA를 추출하여 그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이른바 ‘메타게노믹스(metagenomics)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현재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 구성원을 알아내는 일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기본이 됐다. 그리고 단순히 미생물 신상 파악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능력을 예측하는 수준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동식물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전통적 개체와 거기에 공생하는 미생물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흰 소의 뒷모습에서’, 경향신문 2021년 12월24일자 14면 참조).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우리 몸속 미생물만 1만종 이상
건강·생존에 필수 역할 하지만
정확한 기능·인체 미치는 영향 등
아직도 넘어야 할 장벽 높아

미생물에 대한 달라진 인식

박멸의 대상에서 연구 대상으로
인간 포함해 지구의 모든 생물은
미생물로 연결된 ‘생명 네트워크’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체 역시 여러 미생물의 생태계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각 생태계에는 고유한 미생물 무리가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을 통틀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이라고 한다.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 주도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인간 건강의 상관관계(궁극적으로는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연구진은 건강한 자원자 240여명을 대상으로 입속(구강), 콧속(비강), 피부, 대장, 생식기 등 여러 신체 부위에서 5000개 이상의 시료를 채취하여 미생물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총 1만종 이상의 미생물이 인체에 거주하고 있음을 비롯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인체에는 세균만 해도 37조마리 정도 존재하고, 유전자로 눈을 돌리면 그 차이가 훨씬 더 벌어진다.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수를 비교하면 세균이 360배나 더 많다.

사실, 이들 세균의 유전자는 우리 건강에는 물론이고 생존 자체에 필수적이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장내 세균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효소가 없다면, 음식물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장내 세균은 비타민과 항염증 물질 등 우리 유전자로는 만들 수 없는 여러 유익한 화합물을 만들어준다.

중요한 것은 미생물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유전자 또는 단백질이다. 일례로 건강한 장 속에는 지방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미생물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이 임무를 수행하는 미생물이 늘 같을 필요는 없다. 생물학적으로 말해, 대사기능이 중요한 것이지 이를 제공하는 미생물은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운동경기에서 상황에 따라 선수 교체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할 수 있겠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과 우리는 보통 조화로운 공생관계에 있는데, 이것이 신체 건강의 필요조건이다. 만약 이들 미생물 생태계가 교란되어 조화가 깨지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정체는 상당히 파악했다. 문제는 그들의 정확한 기능과 그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 형성, 그리고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는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치료제가 아닌 건강기능식품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주된 이유다. 이번에 공표된 마이크로바이옴 신산업 육성 계획이 장벽을 뛰어넘는 도약대가 되기를 바란다.

미생물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엄밀히 말하면 그 이전부터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마치 공기처럼 우리가 뭘 하든 어디를 가든 늘 같이 다닌다. 따지고 보면,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은 미생물을 통해서 연결된 거대한 ‘생명 네트워크’나 다름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철학자 김동규는 서양 지성사의 흐름을 ‘4체론’으로 정리한 바 있다. 그는 근본 물음이 한 시대를 구획 지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서양의 고대·중세·근대·현대를 주름잡은 근본 물음으로 각각 ‘실체’ ‘일체’ ‘주체’ ‘매체’를 제시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은 더 이상 근대인들이 믿었던 주체를 믿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것(구조, 무의식적 욕망, 자본, 유전자, 디지털 등)의 대리인 혹은 ‘매체’에 불과하다는 불길한 각성에 도달한다.” 주제넘은 줄 알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을 ‘알 수 없는 그 무엇’ 목록에 추가해달라고 철학자에게 제안해 본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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