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과 음악이 만날 때 [조은아의 낮은음자리표]

2022. 1.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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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술관에 울려 퍼지면 좋을 음악은 어떤 곡일까.

그가 대표했던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 미학적 급진주의로 혁명의 예술을 이끌었다는 해설을 듣는데, 동시대에 활약한 음악가들이 절로 떠올랐다.

크세넥, 힌데미트, 미요, 베르크 등 여러 국적의 작곡가들이 앞다퉈 시베리아 동토를 방문하며 최첨단 음악적 실험을 이식시켰다.

이처럼 활기 넘치는 교류 덕택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나라 밖 다양한 음악적 경향을 체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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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비치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1913년 작)', 크라스노야르스크 미술관 제공

여기 미술관에 울려 퍼지면 좋을 음악은 어떤 곡일까. 동료 피아니스트와 함께 말레비치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이란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제목만 보고 무언가 동일 직종의 공감을 기대했건만, 두 사람 공히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갈기갈기 해체되어 있고 구석의 검은 건반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미리 예습해 찾아본 그림과 달리 위아래 방향도 뒤집혀 걸렸는데, 그만큼 감상에 따라 모든 해석이 가능한 추상화 특유의 불확정성이 확연히 전달되는 듯했다.

그러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우아하게 모방, 재연했던 르느와르나 마티스 등의 그림을 떠올렸다면 누군들 당혹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레비치의 그림은 기존의 감식안에 강력한 해체와 전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대표했던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 미학적 급진주의로 혁명의 예술을 이끌었다는 해설을 듣는데, 동시대에 활약한 음악가들이 절로 떠올랐다. 여기 전시장에 울려 퍼지면 좋을 음악은 아브라모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길 바랐다.

미술사조와 마찬가지로 1920년대 러시아 음악계는 극단적 실험이 만발하며 음악적으로 모든 것이 용인되던 너그러운 시기였다. 1922년, 작곡가 아브라모프는 교향곡에 '공장의 사이렌(Symphony of factory sirens)'이란 파격적인 표제를 붙여 버린다. 이 작품엔 선율을 연주하거나 화음을 이루는 악기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비행기 엔진, 폭탄 투하, 선박의 뱃고동 등 근대문명의 온갖 소음들이 교향곡 음향의 입체적 층위를 이룬다. 아방가르드 미술의 구축주의 그림들처럼 음악에도 물질적 현실을 투영해 새로운 시대의 소리를 알렸던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 음악계는 나라 밖 음악적 이슈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크세넥, 힌데미트, 미요, 베르크 등 여러 국적의 작곡가들이 앞다퉈 시베리아 동토를 방문하며 최첨단 음악적 실험을 이식시켰다. 이처럼 활기 넘치는 교류 덕택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나라 밖 다양한 음악적 경향을 체득할 수 있었다. 전통과 권위에 딴죽 걸며 동시대 서구를 뜨겁게 달궜던 모더니즘 작곡기법은 쇼스타코비치 음악에도 금관과 목관, 타악의 통상적 역할을 전도시키는 등 음색의 혁신을 가져왔다.

전위적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으로 오페라 '코'를 손꼽는데, 극단적 음악어법이 너그러이 용인되었던 당대의 시대상을 당돌히 투영한 작품이었다. 클라리넷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타악기는 청중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소외효과를 생뚱맞게 부추기는가 하면, 금관악기들이 특정 음정에 규정되지 않는 미분음으로 곡예 부릴 때, 선율을 도맡아야 할 현악기들은 파편 이상의 모티브를 연주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스탈린이 권좌에 오르면서 아방가르드 음악사조는 목뼈가 꺾여 버린다. 아방가르드 특유의 해체와 전복을 스탈린 정권은 용납하지 않았다. 예술이란 그저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일조할 영웅적인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교시를 강제했으니, 선율은 마냥 아름다워야 했고 화성은 듣기 좋게 어울려야 했다. 이로써 예술가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가 들이닥쳤다.

아방가르드 미술 역시 '퇴폐'라 낙인찍혀 퇴출당하고 말았다. 많은 화가들이 망명길에 올랐지만 말레비치는 쇼스타코비치처럼 조국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쇼스타코비치가 체제순응의 음악을 양산했듯, 말레비치도 당이 원하는 구상화와 풍경화로 퇴행해 버렸다. 이처럼 오선지와 화폭엔 인생의 굴곡뿐만 아니라 사회의 격랑까지 담기기 마련이다. 아방가르드의 해방을 뒤로하고 리얼리즘의 족쇄에 물린 예술가들의 절박한 처지는 그래서 더욱 사무친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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