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ICBM '레드라인' 넘겠다".. 어른거리는 2017년 '한반도 위기' 그림자
북한이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재가동했다. 2018년 스스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멈추겠다는, 유예 선언(모라토리엄) 번복 의사를 비친 것이다.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미국이 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이자, 북미 간 신뢰 구축의 ‘마지노선’이다. 북한의 번복 언급만으로도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급격히 올라갔다. 자칫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ICBM 발사로 북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7년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어게인 2017' 떠올리는 北 폭탄선언
북한 노동신문은 20일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제8기 제6차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대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핵심 대목은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포치(지시)했다”는 부분이다. ‘신뢰 구축 조치’는 2018년 4월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핵실험ㆍICBM 발사 중지’를 의미한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뒤에도 모라토리엄은 양측의 극단 대치를 막는 ‘완충’ 역할을 해왔다. 이런 안전 잠금장치를 해제하겠다는 건 무력 수단의 정점에 있는 핵을 동원해 미국과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북한의 의도가 현실화하면 한반도에 핵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2017~2018년 초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2017년 6차 핵실험과 ICBM급 ‘화성-15형’ 발사를 감행한 뒤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단추가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김 위원장과 “내 핵단추는 더 크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의 날 선 발언이 오가던 때였다. 그러다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를 전격 선언하고, 이듬해 5월 함경북도 길주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폭파하면서 한반도에는 다시 ‘훈풍’이 불었다.
겉으론 '벼랑 끝', 속내는 "美 관심 압박"
북한의 폭탄 선언은 겉으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무력시위에 처음 단행한 대북제재에 대한 불만 표시로 해석된다. 신문은 “미 제국주의라는 적대적 실체가 존재하는 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장기적 대결에 보다 철저히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시작으로 2주 사이 네 차례 이어진 북한의 무력도발에 독자제재 추가로 맞대응한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한 셈이다. 북한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에 딱 맞춰 회의 결과를 공개한 것도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압박 수위에 비례해 대응 강도를 높여가는, 전형적 ‘강 대 강, 선 대 선’ 기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북문제에 ‘현상 유지’로 일관하는 미국의 관심을 어떻게든 끌어내려는 성격이 짙다. 북한은 2021년 한 해 미국에 탐색과 압박을 병행했다. 가령 지난해 말 열린 4차 전원회의에서 대미 대응 기조를 숨겨뒀다가 연초부터 연쇄 미사일 도발로 미국의 반응을 떠보는 식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중기준 철폐’ 등 북한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는커녕 추가 제재로 맞불을 놓자 초강수 압박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런 데도 우리를 외면할 것이냐”는, 이른바 각성 전략이다.
여기에 ICBM 발사와 핵실험 재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낮은 지지율로 고심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핵과 ICBM을 들먹이면서도 모라토리엄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쐐기는 박지 않았다”며 “미 외교의 후순위로 밀렸던 대북 이슈를 관심 범위에 두겠다는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국내에 매몰된 바이든... 북미 봉합 어려울 듯
시기 역시 고려됐다. 내달 4일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 미사일, 핵 등 무력시위 수단을 총동원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올림픽 기간(~22일)에는 혈맹의 잔치에 훼방을 놓을 수 없는 만큼 1월 중 대미 압박 밀도를 최고조로 높이겠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내부적으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정책으로 한계에 다다른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미국의 양보와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로선 북미의 극적 화해 가능성도 낮은 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2시간 내내 ‘북한’이란 단어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산적한 국내 현안과 우크라이나 등 더 중요한 대외 이슈에 얽매여 아직 북한은 관심 밖이라는 뜻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진짜 핵을 활용하려면 미국 외에 북중ㆍ북러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당장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한 단계 낮은 무력 카드부터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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