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죽고 오래 살게요" 과거사 배·보상..유족들 한목소리
“과거사정리법, 이 법안은 논의해서 통과시킬 시기가 있다. 1월 25일부터 회기가 다시 시작된다. 밀린 법안을 볼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국회에서 다시 꼭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야가 이념으로 붙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모두 같이 하자. 해결하자. 이 법안, 우리가 속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 "우리가 속죄하는 과정"
오늘(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진실규명 결정 후 배·보상 필요성에 관한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서 의원은 “저희 큰외삼촌도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외할머니께서 오늘은 돌아오나, 내일은 돌아오나 동구 밖에서 기다리셨다고 한다”며, “여기 여순(여수·순천사건) 유족도 와계시는데, 여순이 고향이라고 말도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유족이라고는 아예 숨기고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분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우리 때 정리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도 “소송을 통한 구제는 하세월이 될 수 있다. 말이 개선안이지 특별법이나 똑같다”라며 “법률 명칭부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바꿨다며 유족들이 보상을 조금 더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완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특히 “인민군 등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자에 대해선 이전까지 전혀 배상과 보상받을 길이 없던 점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며 국정감사 질의 이후 4개월간 법안을 준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회토론회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많은 유족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유족들을 위해 토론회의 쟁점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피해구제 불균형'
토론회 발제는 송상교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처장이 맡았습니다.
송 사무처장은 1기 위원회가 활동할 당시인 2009년 배·보상 특별법 필요성에 대해 건의를 했고 많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2012년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유족들의 국가배상 청구소송이 많아졌는데, 대법원은 소멸시효 법리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거나 지연 이자를 없애는 방식으로 배상을 제한하거나 정액화하는 방식의 법적 판단을 이어갔다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소송을 통한 피해구제 속성상 개인에게 모든 것이 맡겨졌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소송을 하지 못하거나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하지도 못했고, 설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변호사 선임 등 역량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는 병폐가 벌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송 사무처장은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3년에서 5년에 걸치는 장기간의 소송을 감내해야 하고 피해회복에 있어 여러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습니다.
■ 형사보상의 문제 '8484원칙'
형사보상 문제의 한계점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습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치는 과정에서 금액 산정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법과 법리에 따른 손해배상 절차가 남녀의 차이가 크고, 연령과 직업 등에 따라 최대 몇 배 이상 배상금 차이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김 연구실장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유족 중 우리 어르신은 제주4·3사건 당시 희생돼서 돌아가셨고 기존 8484원칙에 따라 국가배상 1억 원 남짓을 받았는데, 누구네 어르신은 형무소 수용자 생활을 하고 돌아오셔서 아직도 수십 년을 살아계시는데, (구금 일수 계산 등) 이른바 형사보상을 받아 수억 원을 받았다고 말하신다”라며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큰 희생을 받았는데 어찌 덜 받는 가라는 문제를 제기 받았을 때 기존 법리가 그렇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정서적으로 유족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병폐를 꼬집었습니다.
김 연구실장이 말한 ‘8484원칙’은 희생자 본인 8천만 원, 배우자 4천만 원, 직계비속 800만 원, 형제 400만 원이 확립된 판결을 뜻합니다.
또 사법부를 통한 개별소송 해결 과정에선 사안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거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며 현행 배상 규정의 한계를 짚어냈습니다.
■ 소멸시효 문제 개선해야
뒤이어 발언한 이옥남 진실화해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진실규명 신청을 할 때 피해당사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진실규명 결정문을 피해당사자가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해 소멸시효 문제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 위원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도 형평성을 고려해 이뤄져야 하며, 위원회가 진실규명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보상은 별도의 심의기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배·보상 이후 문제도 고려
배·보상 법률 논의에 있어 후속 조치에 대한 제언도 있었습니다.
과거사 추진 과정에 있어 첫 단계로 진실을 규명하고, 둘째로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보상, 마지막으로 화해와 치유, 역사교육 등 3단계로 이어지는 절차에 있어 마지막 절차와 연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병일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은 “배·보상 원칙은 과거사 관련 국가의 관여나 책임의 정도, 보호의무 위반 수준, 피해 규모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며 “배상과 보상을 논의할 때 화해, 치유 그리고 교육과도 연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정의 실현으로 이어져야
피해자에 대한 정의 실현 문제에 대한 언급도 뒤를 이었습니다.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대표변호사는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국가배상 소송이라는 난맥상에 대해 국가폭력 피해로 진실규명이 됐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면 피해자 입장에선 정의가 실현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인민군과 동조세력, 미국 등 외국군의 희생에 대해서도 인도주의적 차원과 공동체 회복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 보상길 막막했는데 '오래 살게요'
토론회에 참석한 유족들은 고령의 나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를 서둘러 달라고 말했습니다.
경북에서 서울 국회까지 먼 거리를 달려와 토론회에 참석한 윤성해 경산 박사리사건 유족회장.
윤 유족회장은 “아버지와 친구분 모두 38명이 단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 부상당하신 분들도 16명이 있는데, 이분들 다 돌아가셨고 부락 108채가 모두 불타버렸다.”라며 “내 나이도 팔순을 넘어서 아흔을 바라보고 있다. 적대세력(빨치산)에 죽었다고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오늘 의원님들과 위원회 분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싶다. 내가 안 죽고 오래 살게요. 여러분.” 이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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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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