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벼랑끝 전술'로 회귀.. 美 상응조치 없자 對美 고강도 압박 [뉴스분석]
"대미 신뢰구축조치 전면 재고"
바이든 취임1년 회견 맞춰 발표
2∼4월 전후 실제 행동 관측
文 '평화프로세스' 물거품 우려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해진 북한의 조치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겨냥해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남한 측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 1년 동안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국에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신년 들어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으며, 미국은 대북제재를 내놓으며 양측의 갈등은 단기간에 급고조돼 왔다. 북한은 급기야 핵실험과 ICBM 발사 등으로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하면서 미국을 조준하고 있다.
◆한·미·중 메가 이벤트 일정 다목적 고려… 대미 압박
북한의 메시지 발신은 3월 대선과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일정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2월 베이징올림픽, 3월 한국 대선 등 한·미·중의 ‘메가 이벤트’(대형행사)를 고리로 협상력 제고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강대강’을 유발하는 북한의 행보는 문재인정부의 종전선언 도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남한의 대선 과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발표로 한·미·일 공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임위 정례회의를 열고 이번 사안을 논의했다. 청와대와 외교·통일 당국은 “추가적 상황 전개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응법은 내놓지 않았다.
북한이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모라토리엄 철회를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면 ‘북·미간 신뢰’를 상징하는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 북한이 2018년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유예했던 군사행동이 핵실험과 ICBM 발사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또는 ICBM 수준으로 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인 2월과 4월에 주목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모라토리엄 검토에서 결정으로 이어지면 빠르면 2월 16일, 늦어도 4월 15일 전후에 실제 행동이 예측된다”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중거리 탄도미사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핵실험 순으로 강도를 넓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물거품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번 메시지 발산이 대외적 혹은 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긴장조성을 통해 내부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을 통해 ‘대사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 생일 110주년, 김정일 생일 80주년과 관련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모라토리엄 준수는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 성과로 꾸준히 강조한 부분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등 대표단이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급물살을 탔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정부의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 북한은 같은 해 5월 24일 ‘선제적 선의조치’라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핵실험장 폐쇄 다음달인 6월 12일 사상 처음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미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항상 순항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2020년 6월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동의 없이 폭파하고 남북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단절했다.
게다가 북한 문제를 뒷순위로 미룬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에 들어서면서 남·북·미 대화는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공간이 줄어든 가운데 이달 말 한·중 화상 정상회담에서 반전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가 있기는 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한·중 화상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범수·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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