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랑데부] '하늘은 검다'고 말한 이유는

한겨레 2022. 1. 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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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의 랑데부]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주란 실감 나지 않는 시공간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별을 보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우주 탐사에 전력을 하고 있는 스페이스엑스의 일론 머스크에게 로켓 쏠 돈으로 가난한 자를 돕거나 세금을 더 내는 게 낫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심채경 | 천문학자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많은 사람이 익숙히 알고 있는 천자문의 시작 부분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인데 일견 의아하다. 하늘은 보통 파랗다고 표현하는데 왜 여기서는 검다고 했을까? 이를 두고 의미가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천자문을 쓴 사람이 평생 주침야활해서 검은 하늘만 보았을 리는 없다. 혹시 낮의 푸른 하늘보다 검은 밤하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낮에 파랗게 맑거나 구름이 뜬 모습,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 등은 모두 일시적인 꾸밈일 뿐이고 하늘의 본모습은 검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천자문의 시작을 여는 하늘이 곧 우주를 뜻한 것이라면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우주의 검은 모습과 같다.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지구 궤도 밖으로 나간 탐사선에서 찍은 사진 없이도, 하늘이라는 것이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반구형의 물체가 아니라 무한히 펼쳐진 텅 빈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했던 것일까. 오로지 사유와 관찰만으로 한곳에 앉아서 우주를 내다보고 통찰한 결과라고 생각해보면 천자문의 시작은 그 어떤 것보다 장엄해 보인다.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이어지는 두번째 구절 우주홍황(宇宙洪荒), 우주는 넓고 거칠다는 표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일월영측(日月盈昃) 진수열장(辰宿列張),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들은 넓게 퍼져 있다는 대목까지를 보면 우주를 노래하는 맥락임이 분명해진다. 그 뒤로는 춥고 더운 것과 계절에 따른 변화, 날씨 등 우주 속 지구상의 자연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천자문은 단순히 낱글자를 학습하기 위한 교재라기보다는, 당대의 학문에 대한 개론 혹은 요약을 전하는 책이라고 한다. 쉽고 어려운 글자가 섞여 있어 글자 공부용으로는 쓰기 어렵다. 그러나 천자문에 대해 우리글로 된 해설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내용인지 훑어볼 수 있다. 우주와 자연, 세상의 이치, 사람으로서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 등이 정리되어 있다. 흡사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 가르치려는 부모님의 잔소리 모음집 같기도 하다. 한데 모아놓으니 지긋지긋하긴 하지만, 하나하나 뜻을 새겨 보면 귀하고 중요한 말씀들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삼라만상에 대해 설명할 때 우주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꽤 근사하기는 하다. 우주는 너무 멀고 지상의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계절을 만든다고는 해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그런 지구 주위를 달이 돌면서 밀물과 썰물을 만든다고는 해도, 그건 우주라기보다는 지구의 일이고 우리는 그런 지구에 익숙해져 있다. 관련 분야 종사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주란 실감 나지 않는 시공간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별을 보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우주 탐사에 전력을 하고 있는 스페이스엑스의 일론 머스크에게 로켓 쏠 돈으로 가난한 자를 돕거나 세금을 더 내는 게 낫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물론 그가 우주 사업을 그만둔다고 해도 그 자금과 기획력으로 가난한 자를 도울 것인지, 의지가 있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어떤 회사가 우주 사업을 하는 데에는 ‘별을 보면 돈이 나온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달이나 소행성에서 희귀 광물을 얻는 직접적인 채산성을 따질 수도 있겠고, 우주 탐사라는 새로운 사업 분야가 생겨나고 확장할 때 거기에 유입되는 자금과 그 안에서 여러 기관과 기업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용과 미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는 자연을 관찰하고 탐색하는 그 자체가 커다란 의미이다. 우리가 지구상에서도 가장 높은 산에 오르고, 가장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가장 메마른 사막과 가장 험준한 계곡까지 살피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를 살피는 것은 자연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명은, 지구는, 태양계는, 은하는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지,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우주의 이치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더 나아가 직접 탐사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막 배워나가려는 초심자에게 세상 이치를 알려줄 때 우리는 하늘과 자연과 우주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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