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국민연금 수탁위원의 고백 "대표소송 수탁위 전문성 떨어져..이념따라 표결 기울 것"

2022. 1.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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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상장협,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 개최
수탁위 비전문가 다수.."책임없이 권한만 가져선 안돼"
국민연금 대표소송은 '연금의 사회주의화'
국민연금 대표소송은 과도한 경영 간섭..기업 경쟁력 ↓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경총·상장협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주주대표소송을 수탁위에 일임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김지윤 기자]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 결정권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해 기업 대상 소송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전문가들은 “연금기금의 사회주의화”라고 비판했다.

세계 주요 연기금 중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 하에 있는 연기금은 국민연금이 유일한데, 여기에 더해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공단 내 독립적 기금운용 조직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로 귀속시키는 것은 ‘정부의 상장기업 국영화’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위에 일임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올해부터 예정된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복지부는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자문기구인 수탁위로 이관하는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지침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수탁위가 판단하도록 이원화돼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현행 수탁위 구성 자체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탁위에 과도한 결정권을 주게될 경우 기업들에 큰 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수탁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재 수탁위 위원은 9명인데, 노동·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이 다수”라며 “이 때문에 이념에 따라 표결이 기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근로자 집단이 필요한 조직이 있지만, 수탁위는 기금을 운용하는 곳인데 기금운용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로 구성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지 않는 단순 자문기구인 수탁위가 핵심 의사결정을 할 경우 기업 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수탁위 활동 자체가 목적이 돼 무분별하게 권한을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정 부회장은 “비상근 위원 중심으로 구성된 수탁위에 어떠한 책임없이 의사결정만 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라며 “결국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당사자는 기금운용본부이고, 소송의 패소에 따른 책임도 공단의 몫”이라고 일갈했다.

정 부회장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 차원에서 수탁자책임 활동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금위가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탁위는 법에 따라 기금위의 순수 자문기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연금 기금관리·운용체계. [경총 제공]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대표소송이 주주가치를 개선시키기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기업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위는 전체 20명의 위원 중 위원장을 비롯한 정부위원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장이 8명을 차지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상치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대표소송을 통해 국민연금이 주주권까지 행사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상장기업을 국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권을 통한 경영간섭보다는 ‘월스트리트 룰(Wall-street Rule)’을 적용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월스트리트 룰은 월가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주식투자자로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의결권을 행사하기 보다 해당주식을 팔아치우는 방법으로 기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일어나는 대표소송에 참여한 적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외국에 유명한 회계 비리 사건 등이 많지만, 만만한 한국기업을 상대로만 소송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표소송이 남발할 경우 해외에서 국내 기업을 공격할 빌미를 만들어 준다고 봤다. 최 교수는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했다고 소문이 나면, 외국에서 다시 같은 건으로 소송을 하게 될 것이고 결국 기업의 통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소송이 가져오는 효과도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는 “국민연금이 승소할 경우 얻은 손해배상금은 기업의 일반 회계에 편입 돼 원고(국민연금 등)가 직접적으로 얻는 이득이 없다”며 “반면 소송 자체로 기업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주가가 하락해 기업과 연기금 모두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또 “패소할 경우 국민연금은 막대한 소송비용과 장기간 소송으로 인한 소송 관리비용만 지출하게 되고 이는 연금에 돈을 넣은 국민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대표소송 결과로 책임을 지는 주체는 결국 기업의 주주와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이라며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주주권 행사를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거버넌스 정립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0일 오전 경총과 상장협 등 7개 경제단체는 보건복지부에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관련 절차 및 결정 주체 등 중요사항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고, 남소방지를 위한 대상사건 제한 및 소송실익 검증장치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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