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라 온후했던 남고 선생의 인품이여

박윤구 2022. 1.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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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상하 삼양 명예회장 1주기
온라인 추모관 열어 생애 재조명
삼양그룹이 우리 산업과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故) 남고 김상하 명예회장(사진)의 1주기를 기념해 추모 영상과 어록을 통해 생애 전반을 재조명한다.

20일 삼양그룹은 지난해 1월 20일 향년 95세로 별세한 김 명예회장의 1주기를 맞이해 온라인 추모관을 이달 23일까지 연다고 밝혔다. 삼양그룹 홈페이지를 통해 방문할 수 있는 추모관에는 김 명예회장의 추모 영상과 어록 등이 게재됐다.

7분 분량의 추모 영상에는 "회사에서 나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다"는 김 명예회장의 어록을 시작으로 기업 경영과 사회 공헌, 직원 소통 등 모든 면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한 고인의 생애가 담겼다.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삼양그룹이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마다 기술과 설비 도입을 도맡으며 현장을 이끈 김 명예회장의 현장 중시 경영과 연구개발(R&D) 혁신을 중시한 산업보국의 경영 철학을 녹여냈다. 대외 활동과 인재 육성으로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노력도 재조명했다. 김 명예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2년 재임을 비롯해 한일경제협회장, 제2의건국위원회 공동위원장, 대한농구협회장, 환경보전협회장 등 100여 개 단체의 회장직을 맡으며 문화, 체육, 사회 전반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또한 수당재단과 양영재단, 하서학술재단 이사장을 맡아 인재 육성과 학문, 과학 기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 창업주 수당 김연수 선생의 7남6녀 중 5남으로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삼양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1950~1960년대에는 제당, 폴리에스테르 사업 등의 기술과 설비 도입을 추진하고 삼양사 사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폴리에스테르 섬유 원료인 테레프탈산(TPA)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분·전분당 사업에 진출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삼양그룹 관계자는 "김 명예회장은 중용과 겸손의 미덕을 실천하면서 산업보국을 위해 쉼 없이 봉사하고 헌신했다"며 "김 명예회장을 비롯한 선대 경영진의 뜻을 삼양의 새로운 100년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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