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린 그녀들의 고민, 펨테크가 자유롭게 하리니

안상현 기자 2022. 1. 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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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월경·임신·호르몬까지 해결, 해피문데이 창업한 김도진

ICT(정보 통신 기술) 발달로 커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새로 떠오르는 산업이 있다. 월경과 임신, 모유 수유, 여성 질환, 갱년기, 폐경 등 여성 건강을 위한 각종 기술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통칭하는 ‘펨테크(FemTech, Female Technology)’다. 펨테크 시장의 역사는 길지 않다. 용어 자체도 생리 주기 앱 클루(Clue)를 개발한 독일 기업가 이다 틴이 2016년 처음 쓰면서 만들어졌다. 틀이 잡힌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는 2020년 225억달러(약 26조7500억원) 규모였던 세계 펨테크 시장이 오는 2027년에는 650억달러(약 77조3000억원) 이상으로 급격히 불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작년 8월에는 미국의 메이븐 클리닉(Maven Clinic)이 1억1000만달러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하면서 세계 최초 펨테크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펨테크 기업들이 드디어 투자 붐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한국 투자시장에서도 최근 주목받은 펨테크 기업이 있다. 지난달 11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한 해피문데이다. 유기농 순면 생리대 정기 구독 서비스로 시작해 생리 주기와 호르몬 변화를 측정·관리해주는 앱을 개발하는 등 본격적인 펨테크 기업으로 자리 잡은 해피문데이는 하나벤처스와 아주IB투자 등 투자 기관들에 “팸테크계의 수퍼 앱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WEEKLY BIZ가 국내 펨테크 선두 기업으로 꼽히는 해피문데이 김도진(31) 창업자 겸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기회가 된 생리대 유해 물질 파동

김 대표의 나이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젊은 편이지만, 경력으로 치면 10년이 다 된 중견급이다. 중학생 때부터 기업가를 꿈꾸며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큰 기업의 경영 사례만 얘기하는 학교 안에서 배워 창업하는 건 아니라고 느꼈다”며 학생 시절부터 일찍이 경영 현장에 뛰어들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을 하고 모바일 광고 스타트업(랙션)과 오픈서베이 같은 리서치 기업에서 일하며 업무를 배웠고, 졸업 한 학기를 남긴 시점에는 책 추천 서비스 스타트업 ‘어떤사람들’을 공동 창업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고생했던 첫 창업은 2년 정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후 벤처캐피털에 들어가 심사 업무를 1년 정도 맡았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실패했을 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실패하더라도 들인 투자와 시간이 후회되지 않게끔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기업을 창업하겠다”며 만든 기업이 해피문데이다.

국내 펨테크 선두기업 해피문데이 김도진 대표가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자사 여성용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해피문데이는 지난달 벤처캐피털로부터 11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박상훈 기자

실패를 감수하겠다며 만든 스타트업이지만, 설립한 2017년부터 운 좋게 빠른 성장세를 탔다. 때마침 ‘생리대 유해 물질 파동’이 터졌기 때문이다. 시중 유명 생리대 제품들에서 발암 물질인 다양한 종류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이 새로운 생리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해피문데이가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자체 개발한 유기농 생리대 제품이 관심을 받게 됐다.

김 대표는 “유기농 생리대는 인조·합성섬유 대신 천연 재료인 목화를 사용하고 방수층에 고가의 통기성 필름을 쓰는 등 재료 선정과 공정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만큼 시중 생리대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이 점을 극복하려 정기 구독 서비스라는 직접 판매 채널을 통해 가격을 최대한 낮췄다”고 했다. 그는 “해피문데이 생리대는 패드당 400원 수준인데 이는 가장 저렴한 제품보다는 두 배쯤 비싸지만 해외 유기농 생리대에 비하면 절반 가격이어서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고객들에겐 오히려 저렴하다는 반응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 반응은 실적에서도 나타났다. 김 대표는 “주요 판매 채널인 정기 구독 서비스의 연간 지속률이 85%에 달한다”며 “매년 생리대 수백만 장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이미 2019년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말했다.

◇“펨테크 빅데이터, 여성 질병 치료에 도움”

해피문데이는 생리대 외에 탐폰과 질염 테스트기, 임신 테스트기 등 다양한 여성용품으로 제품군을 확장한 데 이어 2020년 9월 여성 맞춤형 건강 모바일 앱 ‘헤이문’을 출시하며 진정한 의미의 팸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헤이문은 생리 주기 관리와 함께 각종 설문으로 호르몬 변화를 감지해 몸 상태를 진단하고 적합한 가이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다운로드 수가 이미 45만회를 돌파했다. 가령 ‘여성의 감기’라 불리는 질염 같은 여성 질환에 대한 가이드 콘텐츠는 간호학과 약학 전공자가 만들고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자문하는 방식으로 정확성을 끌어올렸다. 김 대표는 “헤이문의 생리 주기 분석 배란일 예측 알고리즘은 개인 맞춤형이다 보니 기존 표준일 계산법 대비 정확도가 30~40% 정도 높다”며 “5만명의 월경 실주기 데이터를 가지고 검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헤이문 앱화면

국내 팸테크 산업은 아직 태동기이지만, 해피문데이를 필두로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대면 질염 및 성병 자가 검사 키트 ‘체킷’을 만드는 쓰리제이, 임신부·출산모를 위한 운동 코치 앱 ‘헤이마마’ 운영사 더패밀리랩, 전국 70여 산부인과·유방갑상선외과와 제휴해 전문의 개별 상담을 제공하는 여성용 헬스케어 앱 ‘닥터벨라’를 만든 모션랩스, 여성 전문 미디어·쇼핑몰 렛허, 머신러닝으로 개인화된 여성용품을 추천해주는 플랫폼 ‘먼슬리씽’을 개발한 씽즈 등이다. 작년 8월엔 이 펨테크 스타트업들이 모여 정보 교류와 사업 제휴를 위한 동맹을 맺기도 했다.

김 대표는 “팸테크 기업에 모이는 여성에 대한 빅데이터는 관련 의료 분야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펨테크 기업이 더 많아져 산업 파이 자체를 더욱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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