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승에도 태극마크 외면..은퇴 후 밝히는 속내 "나갔으면 잘할 수 있었다" [오!쎈 잠실]

이후광 입력 2022. 1. 20. 17:20 수정 2022. 1. 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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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즌 18승, 8년 연속 10승, 통산 101승에도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알고 보면 유희관은 KBO리그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투수다.

8년 연속 10승을 거둔 투수 중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건 유희관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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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잠실,박준형 기자]유희관이 기자회견을 갖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1.20 / soul1014@osen.co.kr

[OSEN=잠실, 이후광 기자] 한 시즌 18승, 8년 연속 10승, 통산 101승에도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유희관(36)이 2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 속내를 밝혔다.

유희관은 커리어 내내 공이 빠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과 싸워왔다. 유희관이 승리를 하면 스트라이크존이 넓고, 타격과 수비 도움이 큰 것이고, 부진하면 느린 공은 역시 프로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저평가를 받아야 했다. 노련한 완급조절과 스트라이크존의 구석을 정확히 공략하는 능력은 늘 130km라는 구속에 묻히기 마련이었다.

알고 보면 유희관은 KBO리그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투수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거둔 8년 연속 10승은 그 동안 이강철, 정민철, 장원준 등 리그 최정상급 투수들에게만 허락된 기록. 여기에 지난해 9월 19일 고척 키움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며 KBO 역대 32번째, 좌완 7번째이자 두산 좌완 프랜차이즈 최초로 100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에도 태극마크는 늘 남의 것이었다. 국가대표 사령탑, KBO 기술위원마다 ‘공이 느리면 국제대회에서 통할 수 없다’는 기조 아래 느림의 미학을 외면했다. 2015년 18승으로 다승 토종 1위에 올라도, 2016년 15승을 거둬도, 에이스의 상징인 10승을 잇따라 해내도 국가대표 초청장은 날아오지 않았다. 8년 연속 10승을 거둔 투수 중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건 유희관이 유일하다.

유희관은 “나갔으면 잘할 수 있었다. 내 공이 느렸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아쉽다”면서 “한편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뽑히지 않은 것이다.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그 쪽에서는 대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시원섭섭한 속내를 전했다.

편견에 따른 악플에 대한 솔직한 마음도 들어볼 수 있었다. 유희관은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다. 그것도 관심의 일종이다”라며 “당사자는 속이 많이 상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분들도 나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신 것이다. 그분들에게도 감사하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다. 야구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희관은 다시 태어나면 야구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마추어 시절 구기 종목에 능했던 그는 “야구 빼고는 다 할 것 같다. 공으로 하는 운동을 다 잘해서 딱히 야구 빼고 뭘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너무 쉼 없이 달려와서 야구는 가슴 속에 담아두겠다”고 밝혔다. /backligh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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