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행복한 선수"..두산 유희관, 눈물 속 은퇴
기사내용 요약
130㎞대 중반 느린 공으로 KBO리그 통산 101승
"지난 시즌 은퇴 결심…좋은 팀을 만나 편견을 깨고 은퇴 기자회견까지"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늘 유쾌했던 유희관(두산 베어스)이 눈물을 흘렸다. KBO리그에서 가장 느린 공으로 101번의 승리를 만들어낸 유희관(두산 베어스)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유희관은 20일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생활의 끝을 알렸다.
유희관은 평소와 달리 유니폼이 아닌 검은색 정장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꽃다발을 건네주며 유희관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첫 승과 100승 당시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던 포수 박세혁과 유희관으로부터 투수조장을 이어받은 홍건희, 토종 에이스 계보를 잇고 있는 사이드암 최원준도 참석해 선배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유희관은 "솔직히 여기 오기 전까지는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야 유니폼을 벗는다는 실감난다. 지금도 믿기진 않는다"면서 "이런 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선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추억을 공유했던 감독들과 동료들을 언급하면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극도로 부진했던 지난 시즌이었다.
유희관은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빠졌다. 내가 빠진 야구와 후배들을 보면서 '이제는 내가 자리를 물려줘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이어 "2군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구단과 연봉 문제로 은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팀이 좋은 흐름으로 성장하는데 내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좀 더 좋은 모습일 때 떠나 자리를 물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보탰다.
장충고-중앙대를 거친 유희관은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데뷔 첫 해 16경기에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4.05를 찍은 유희관은 이듬해에는 5경기 3⅓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다.
유희관의 야구 인생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3년부터다.
그해 5월4일 등근육이 뭉친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대신해 생애 첫 선발 기회를 잡은 유희관은 5⅔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이후 유희관은 승승장구했다. 2013년 10승7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3.53으로 선발진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유희관은 2014년 12승(9패)을 찍더니 2015년 데뷔 후 최다인 18승(5패)을 수확했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매년 제 몫 이상을 해낸 유희관은 2020년까지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맛봤다.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4번 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길었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은 유희관의 통산 성적은 281경기(1410이닝) 출장 101승69패 평균자책점은 4.58. 처음부터 끝까지 소속팀은 오로지 두산 뿐이었다.
유희관은 "프로 첫 승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니퍼트의 대체 선수로 나서 처음 승리했다. 그때 '1'이라는 숫자가 있기에 '101'이 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2015년 프로 와서 처음 우승했을 때다. 잠실구장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돌아봤다.
데뷔 초창기나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지난 시즌이나 유희관의 최고 구속은 130㎞대 중반대에 불과했다. 느린공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유희관은 보란 듯이 이겨냈다.
유희관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건 나를 대변하는 좋은 단어다. 나 또한 '프로에서 느린 공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야구를 했다"면서 "모든 분들이 '1~2년 후에는 안 될거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남들 보이지 않게 노력했고, 좋은 팀을 만나 편견을 깨 은퇴 기자회견까지 하는 선수로 거듭났다"고 전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으로는 8년 연속 10승을 꼽으면서 그 영광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두산이라는 팀에 들어와서 좋은 동료, 감독님, 코치님들을 만나 기록을 썼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은퇴 기자회견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현역 시절 때도 야구계 입담꾼으로 유명했던 유희관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할 계획이다. 벌써부터 해설위원, 방송제의 등 러브콜이 쏟아진다.
"나이 먹으니 마음이 많이 여려진다. 이런 걸 보면서 왜 울까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아쉽다"고 다시 눈물을 훔친 유희관은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테니 응원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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