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뽑자 재하도급]② "일감부터 따고 보자는 영세업체와 솜방망이 처벌의 합작품"
지난 11일 광주광역시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장에서 일어난 붕괴사고의 배경 중 하나로 재하도급 관행이 지적되면서 이 기회에 왜 재하도급 관행이 건설업계에 만연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전문건설업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세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재하도급에 기대는 상황에서, 처벌 규정마저 유명무실하게 운영돼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 “살아남으려면 일단 수주부터 해야… 감당 안 되면 재하도급”
재하도급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하도급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세업체들이 난립했기 때문이다. 하도급·재하도급 시장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전문건설협회에 등록된 업체만 전국에 5만여개, 경기도에만 6800여개가 있다”면서 “이들 절대다수는 영세한 규모에 1~2개 공종별 면허만 가지고 있어 하도급·재하도급 없이는 유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종합건설사는 공사를 수주한 후 분야별로 나눠 전문건설사들에 하도급을 준다. 종합건설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을 만한 규모의 전문건설사는 전체 전문건설사의 일부다. 결국 이들이 먼저 수주한 다음 더 작은 전문건설사에 일을 나눠 맡기는 경우가 생기는 게 재하도급 구조다.
대형 전문건설사는 일감이 늘 충분한 게 아니다 보니 회사의 처리 능력과 상관없이 일단 수주부터 하고 보는 관행이 있다. 여기에 대형 전문건설사라도 전국 각지의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기는 여간해선 어려운 일이다. 지역의 전문건설사를 찾아 다시 일을 넘기게 되는 이유다.
규모가 작은 전문건설사 입장에서는 종합건설사의 수주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데다 영업에 비용을 쓰기도 어렵다. 결국 다른 전문건설사로부터 싼값에 일감을 넘겨받아 공사하게 된다. 이것이 한 번 더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엉뚱하게 맞아들어가 생긴 것이 현재의 재하도급 구조인 셈이다.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회사로서는 이익이 남지 않거나 일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더라도 장비나 인력을 놀리지 않고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이익이 별로 남지 않는 일까지 일단 수주하게 되고, 어떤 때는 일손이 달려서 또 어떤 때는 직접 하면 이윤이 남지 않아 재하도급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 현장 관리자도 “대부분의 하도급 업체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여러 사업장에서 닥치는 대로 하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영세기업이 모든 사업장을 관리할 수 없으니 더 영세한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게 되는데, 이런 단계가 반복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정상적인 건설공사인 경우에도 재하도급 계약금액은 원도급의 73.2% 수준으로, 도급 과정에 약 27%가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했던 광주 사고처럼 다단계 불법 하도급이 발생할 경우 공사비 누수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현장 관리자는 “사업장마다 상황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하도급·재하도급에 따라 평균적으로 이윤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는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만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때로는 ‘넉넉히’ 남기고 마지막 하도급 업자에 넘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줄어든 공사비는 결국 불량 자재 사용, 미숙련공 사용 등을 통해 단가를 맞추게 되고, 사고 발생 위험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 무시해도 될 수준의 처벌규정… “제재가 무섭지 않다”
하도급 자체는 현행법률상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는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재하도급이 가능한 일부 경우가 있지만 법적 요건이 까다롭다. 이를 어길 경우 원도급사는 건산법 제99조에 의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게 된다. 하도급사는 동법 제82조·96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1년 이내 영업정지 또는 100분의 30상당 과징금 ▲500만~20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처벌 규정 자체가 재하도급 관행을 뿌리 뽑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처벌은 대부분 과징금이나 과태료 부과에 그치고, 형사처벌까지 가는 사례는 드물다. 단적으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불법 하도급으로 영업정지를 받은 12건 중 형사고발 처리된 건은 4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학동 광주 재개발 철거 현장 역시 시공사였던 HDC현대산업개발은 143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하청업체가 물게 된 과태료(1890만원)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건설 현장 한 관계자는 “지난해 광주 학동 철거 현장 붕괴사고의 경우 단위면적당 공사비는 당초 1평(3.3㎡)당 28만원이던 것이 재하도급을 거치며 4만원까지 떨어졌다”면서 “3만8000평(12만6400㎡)에서 재하도급으로 남긴 돈에 비하면 500만원, 2000만원 수준의 과태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도 주요 인력 구성은 그대로 법인 이름과 경영진 일부만 바꿔 영업을 계속한 경우도 많았다”면서 “그마저도 처벌 없이 유야무야 끝난 판례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그나마 처벌을 받는 경우도 흔치는 않다. 법령 적용이 매우 제한적이라 원도급사의 경우 지시·공모·묵인·해태 여부를 당국이 입증해야만 하고, 불법 하도급을 받은 업체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그나마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는 건산법에 따라 과태료나 영업정지 등 처분을 받을 수 있지만, 재하도급을 받아 실제 공사를 한 업체는 건설사업자로 등록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처벌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건산법은 건설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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