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와 작별한 유희관.."나는 행복한 야구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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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유희관(36)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늘 유쾌했던 유희관도 마운드와 작별하는 순간에는 눈물을 흘렸다.
유희관은 20일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잠실야구장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두산 베어스 구단과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유희관은 힘겹게 자신의 인생 곳곳에 스며든 '야구'와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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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은 내 야구 인생 대변하는 좋은 수식어"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느림의 미학' 유희관(36)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늘 유쾌했던 유희관도 마운드와 작별하는 순간에는 눈물을 흘렸다.
유희관은 20일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잠실야구장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두산 베어스 구단과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유희관은 정장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이어 김태형 감독과 유희관의 1군 첫 승을 합작한 포수 박세혁, 동고동락한 투수 홍건희, 최원준이 식장을 찾아 유희관에게 꽃다발을 안기며 새 출발을 응원했다.
"미디어데이에 자주 나오고, 인터뷰도 꽤 해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고 운을 뗀 후 잠시 말을 멈춘 유희관은 "영광스러운 자리 마련해주신 구단주와 두산 프런트에 감사하다. 입단할 때부터 많이 아껴주신 두산 역대 감독님과 코치님, 같이 땀 흘리면서 고생한 동료들께도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두산 팬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항상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질책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내 인생의 ⅔인 25년 동안 야구했다. 은퇴한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지만, 은퇴 기자회견까지 하는 걸 보면 '행복한 야구 선수'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야구 인생을 떠올렸다.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번졌다.
유희관은 '공이 느린 투수는 롱런할 수 없다'는 편견과 싸우며 개인 통산 '101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로 두산에 지명된 유희관은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2011·2012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두산 선수'로 살았다.
유희관은 시속 120∼130㎞대 몸쪽 직구와 120㎞ 초반 바깥쪽 싱커의 절묘한 조합으로 1군에서 개인 통산 281경기에 출전해 1천410이닝을 던져 101승 69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4.58을 올렸다.
장호연의 보유한 두산 프랜차이즈 최다승(109승) 경신을 인생 목표로 삼았던 유희관은 기록 달성은 눈앞에 두고 은퇴를 택했다.
유희관은 모두가 인정하는 '두산 왕조의 주역'이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는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고, 두산 왼손 투수 최초로 100승 고지도 밟았다.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는 이강철 kt wiz 감독과 정민철 한화 이글스 단장, 장원준(두산), 유희관 등 KBO리그에서 단 4명만 달성한 기록이다.
유희관이 '느린 공'으로 승수를 쌓는 동안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2015∼2021년)에 진출하고, 세 차례 우승(2015, 2016, 2019년)을 차지했다.
눈물을 멈추고 다시 특유의 재치 있는 인터뷰를 이어가던 유희관은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한 뒤 또 울었다. 그렇게 유희관은 힘겹게 자신의 인생 곳곳에 스며든 '야구'와 작별했다.
다음은 유희관과의 일문일답이다.
-- 은퇴가 실감 나는가.
▲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떨린다. 영광스러운 자리 마련해주신 구단주와 두산 프런트에 감사하다. 입단할 때부터 많이 아껴주신 두산 역대 감독님과 부족한 나를 지도하신 많은 코치님, 같이 땀 흘리면서 고생한 동료들께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두산 팬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 항상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질책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 야구 인생을 돌아보자면.
▲ 내 인생 ⅔인 25년 동안 야구 선수로 살았다. 은퇴한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걸 느낀다. 나는 행복한 야구 선수라고 생각한다.
-- '느림의 미학'이라는 수식어는 유희관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좋은 애칭이었다. 나 또한 '이렇게 느린 공으로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다. '1, 2년 하다 보면 포기할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고, 두산이라는 좋은 팀을 만난 덕에 은퇴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
-- 은퇴를 생각한 시점은.
▲ 모든 선수가 언젠가는 은퇴한다. 작년에 아주 부진했고,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결국, 2021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빠졌다. 포스트시즌에서 열심히 뛰는 후배들 모습을 보면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은퇴 결심과 연봉은 무관하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었다.
-- 향후 계획은.
▲ 고민 중이다. 그동안 뵙지 못했던 분과 만나면서 조언을 많이 듣고 있다. 나도 제2의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때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 해설 제의를 받았을 텐데.
▲ 해설 제의는 방송 3사에서 받았다. 은퇴를 결심한 뒤 '이제 야구장에 출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래도 나를 찾아주시는 분이 많아서 안도감이 생겼다. 해설위원이 될지, 다른 방송인이 될지, 코치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 기억에 남는 순간은.
▲ 1군 첫 승을 거둔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013년 5월 4일 LG 트윈스전이다. 당시 더스틴 니퍼트의 대체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챙겼다. '1승'이 있어야 '100승'까지 갈 수 있다. 2015년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우승한 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다.
-- 가장 뿌듯한 기록은.
▲ 8년 연속 10승이다. 100승 이상을 거둔 것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나 혼자 만든 기록은 아니다. 감독, 코치, 동료들 덕에 좋은 기록을 만들고 떠난다.
-- 장호연의 109승을 깨지 못한 아쉬움이 있을 텐데.
▲ 아쉬움은 남는다. 기록을 의식하고 야구하지 않았지만, 두산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은 세우고 싶었다. 나는 장호연 선배 기록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후배들이 더 좋은 기록은 만들었으면 한다.
-- 주요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한 아쉬움도 클 텐데.
▲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뽑히지 못한 것이다. 공이 느리니 국제대회에서 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그 분야에서 대표가 되겠다.
-- 은퇴 결정 후 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받았는데.
▲ 선플(좋은 댓글)을 받아본 게 처음인 것 같다. '다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는 메시지를 받고 울컥했다. 팬이 없으면 프로야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댓글이 달리지 않는 것)이다. 악플도 관심의 일종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은 분도 야구팬이지 않은가. 야구를 사랑하시는 팬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 모질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퇴한다고 하니 모두가 연락을 줬다. 양의지(NC 다이노스), 김현수(LG), 이원석(삼성 라이온즈), 최주환(SSG 랜더스) 등 두산에서 만나 다른 팀으로 간 동료들의 인사도 받았다. '후배들을 더 따듯하게 대할걸'이라는 후회는 한다. 내 잔소리 듣느라 정말 고생했다.
-- 선배들에게도 한마디 하자면.
▲ 두산 선배들을 보면서 프로 선수의 삶을 배웠다. 선배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유희관도 없었다. 두산은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선후배의 문화'를 지킨다. 우리 후배들도 두산의 문화를 유지하며 명문 팀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 김태형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감독님이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감독님과는 좋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감독님이 나를 아들처럼 생각해주셨다. 감독님 부임 첫해(2015년)에 우승했고, 개인 한 시즌 최다인 18승을 거뒀다.
-- 다시 태어나면 어떤 종목을 하고 싶은가.
▲ 야구 빼고.(웃음) 학창 시절부터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잘했다. 다른 종목 선수로 뛰어도 꽤 잘하지 않았을까. 이번 생은 야구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야구는 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 그라운드에서 늘 유쾌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팬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두산을 사랑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우리 프로야구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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