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이겨낸 '느림의 미학' 유희관, 당당하게 떠났다
[잠실=뉴스엔 안형준 기자]
유희관이 커리어를 마치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은 1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13년 프로 커리어를 마쳤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형 감독과 배터리였던 박세혁, 투수조 후배인 홍건희, 최원준이 자리해 프랜차이즈 스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꽃다발을 건넸다.
2009년 두산에 입단한 유희관은 1군 통산 281경기에 등판해 1,410이닝을 투구했고 101승 69패, 평균차잭점 4.58을 기록했다. 두산 좌완 최초 100승 고지를 밟았고 8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도 거뒀다. 오버핸드 투수임에도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40km 미만이었지만 유희관은 특유의 제구력과 볼배합으로 정상급 활약을 펼쳤다. 두산의 2010년대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에 모두 기여했고 2015년에는 최동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희관은 자신을 "편견과 싸워온 선수"라고 밝혔다. 빠른 구속은 투수의 최고 무기 중 하나. 강속구 투수의 체인지업보다 느린 직구를 던지는 유희관을 두고 '잠깐 반짝하고 말 것'이라는 평가가 쏟아졌지만 유희관은 13년 동안 뛰었고 통산 100승 고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당당히 은퇴 기자회견까지 할 수 있는 커리어를 쌓았다. 유희관은 "나는 가진 것보다 화려했던 것 같다. 실력에 비해 많은 것을 이뤘다"고 말했지만 그는 분명 KBO리그의 한 시대에 이름을 남긴 투수였다.
유희관은 "나도 내가 이렇게 느린 공을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안될 것이라고, 1-2년 하다보면 결국 안될 것이라고 했다"며 "하지만 남들 모르게 열심히 노력했고 편견을 깼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별명은 나를 대변하는 좋은 애칭이었다"고 돌아봤다.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편견을 깰 수 있었고 빠른 공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편견 만큼이나 혹평과 비난도 많이 받았다. 유희관은 "은퇴 발표 반응을 보며 혼자 울컥했다"며 "이렇게 악플이 아닌 선플을 많이 받아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유희관은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다. 악플도 관심이다. 그분들도 내게 관심이 있으셨던거다. 내 팬이 아니라도 모두 야구팬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유희관은 특히 힘겨운 2021시즌을 보냈다. 1군에서 단 15경기, 63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2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13-2020시즌 8년 연속 136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8년 연속 10승을 거둔 투수 입장에서 힘겨운 시간이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고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유희관은 "포스트시즌에 빠진 것도 작년이 처음이었다. 2군에 오래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포스트시즌에서 후배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자리를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들이 명문 두산을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예전만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졌다. 팀이 성장하는데 내가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더 안좋은 모습이 되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유희관은 "그라운드에서 항상 유쾌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팬들께서 후배들과 두산, 나아가 프로야구를 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야구 인기가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음향 기기 문제로 인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첫 인사말과 은퇴 소감을 건네며 울먹인 유희관은 기자회견이 중단되자 "기계마저도 내게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래야 나답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고 웃었다. 25년을 바친 그라운드와 작별하는 아쉬움과 슬픔을 다 숨기지는 못했지만 유희관은 끝까지 유쾌했다.(사진=유희관)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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