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연금 대표소송 맡는 건 '연금사회주의' '자국기업 팀킬법'

김경민 2022. 1. 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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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과 상장협은 20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위에 일임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왼쪽부터 이상철 경총 실장, 김원식 건국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권재열 경희대 교수,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

[파이낸셜뉴스]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 대표소송 논란은 정부가 소송 결정 주체를 기존 국민연금 산하 기금운용본부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에 불과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바꾸려 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행은 독립적인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탁위가 판단토록 이원화하고 있지만, 복지부는 노동·시민단체 추천 위원으로 편중된 수탁위로 일괄 전담하겠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진을 정조준하는 과도한 경영간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 핑계로 연금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20일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를 열고,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위에 일임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특히 수탁위의 구성이 노동계와 시민단체 추천위원으로 쏠려 있는 만큼 수탁위로 권한이 이관되면 소송 남발이 불보듯 뻔하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수탁위 위원 9명 중 사용자 측은 3명에 불과하고 6명(근로자 및 지역가입자)이 사실상 근로자 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현행 지침대로 시행도 해보지 않고,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바꿀 이유가 없다. 국민연금 내부 지침에 불과한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으로 잘못된 권한위임을 해서는 안 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세계 주요 연기금 중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연기금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여기에 노동·시민단체에 의한 기업 경영개입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넘어 주주제안이나 대표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건전한 목적의 대화를 넘어선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며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 기업 역시 국제적 망신을 초래하게 되고 외국 헤지펀드들의 다양한 위협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어 "왜곡된 수탁자 책임론에 기초해 끊임없이 경영권 간섭을 시도하며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면, 결국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면서 "국민 노후자금으로 주주노릇하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경영간섭을 정당화하는 그것이 곧 '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에선 현실적인 대안들도 제시됐다.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은 수탁자책임 활동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금위가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탁위는 법에 따라 기금위의 순수 자문기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데에는 대표소송보다 '월스트리트 룰'을 적용해 주식을 전량 매각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며 "대표소송으로는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없고, 오히려 호재 없이 경쟁기업의 주가만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도 "대표소송 결과로 책임을 지는 주체는 결국 기업의 주주와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이라며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주주권 행사를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거버넌스 정립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최근 5년간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고도 실제 부결된 비율이 평균 2.4%에 불과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지적됐다.

기금위 위원인 이상철 경총 실장은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고도 부결율이 지극히 낮다는 것은 수탁위 판단이 전체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못함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대표소송 결정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주주대표소송 개요

■'팀킬법' 거센 비난, 한발 물러난 정부
대표소송은 국민연금이 지분 투자한 기업이 타깃으로,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 중소기업도 모두 포함된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현재 300개사에 달한다. 대표소송은 상장사 경우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다.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과 판단이 소송 도마에 오를 수 있어 '이현령비현령' 제도라는 점도 문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결국 정부가 정치적 도구로 쓰기 딱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사실상 민간기업을 길들이는 공기업화 정책과 다를 게 없다"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외국의 파트너들이 자국내 국부 펀드에 제소를 당한 회사와 신뢰감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국내 기업에 대한 무차별 소송을 야기시키고,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팀킬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경영계의 거센 반발과 여론이 악화되자 이날 복지부는 한발 물러나 당초 결정을 한달 정도 미뤄 내달 말에 최종 논의키로 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전무는 "경제계의 우려를 정부 측에 잘 전달했고 아직 공식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다"며 "2월말 결정 때까지 양측이 토론을 통해 문제를 잘 풀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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