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유희관 "난 행복한 선수, 항상 유쾌했던 선수로 기억되고파"(일문일답)
[잠실=뉴스엔 안형준 기자]
유희관이 유니폼을 벗었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은 1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13년 프로 커리어를 마쳤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형 감독과 박세혁, 홍건희, 최원준이 참석해 유희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꽃다발을 건넸다.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검정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유희관은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활짝 웃었지만 은퇴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유희관은 "미디어데이 행사 등 여러가지를 해봐서 안떨릴 줄 알았는데 떨린다. 구단에 감사드린다. 내가 신인으로 입단했을 때부터 부족했음에도 아껴주신 역대 감독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많이 부족한데도 지도해주신 많은 코치님들께 감사드린다. 같이 땀흘리며 고생했고 가족들보다도 더 자주 보며 함께 달려온 선후배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두산 팬들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항상 응원과 격려, 질책을 해주신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사진=유희관)
▲유희관 일문일답
○은퇴가 실감나나? - 여기 오기 전까지는 실감이 안났다. 와서 취재진들을 만나니 실감이 난다. 하루이틀이 아닌 25년 동안 야구를 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만큼 했고 이런 자리까지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그래도 열심히 했구나, 난 행복한 선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어땠나? - 나를 대변하는 좋은 애칭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느린 공으로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모두가 1-2년 하다보면 결국 안될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남들 모르게 열심히 노력했던 덕분에 편견을 깨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은퇴를 생각했나? - 사람은 늘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은퇴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년에 많이 부진하며 2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1군에서 포스트시즌을 빠진 것도 처음이었다. 후배들이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며서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들을 보며 흐뭇했고 후배들이 명문 두산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올겨울에도 연봉 협상을 했는데? 향후 진로는? - 연봉 문제 때문에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만큼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팀에 좋은 투수들이 많이 성장하고 있는데 내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했다. 더 안좋은 모습을 보이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 2의 인생은 여러 사람을 만나며 많은 조언을 듣고 있다. 어떤 모습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 그때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해설 제의 몇 번 받았나? - 에이전트가 있어서 말을 함부로 못하겠다(웃음). 3군데서 다 받았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야구를 그만두고 야구장으로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그래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해설을 하게될지, 방송을 하게될지, 코치를 하게될지도 아직은 모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순간은? - 2013년 5월 4일 프로 첫 승리다. 니퍼트 대신 던졌다. 그 1이라는 숫자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2015년 첫 우승이다.
○팀 내 최다승(장호연 109승) 기록을 깨고싶다고 했었는데? - 아쉽다. 기록을 의식하고 야구하지는 않았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나아갈 수 있었다. 팀 최다승 기록을 세우고 싶었지만 아쉽게 못했다. 나보다 더 뛰어난 후배들이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또 스포츠 선수가 된다면 어떤 종목을 하겠나? - 야구 빼고 다 할 것 같다. 사실 공으로 하는 것은 다 잘했다. 너무 쉼없이 달려왔으니 야구는 이제 가슴 속에 담아두겠다.
○국가대표가 됐다면 잘했겠나? - 자신은 있었다. 나갔다면 잘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쉽다. 다음에 뭘 하든 그 분야에서도 멋진 대표가 되도록 하겠다.
○은퇴에 대한 팬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은? - 이렇게 악플 말고 선플을 받아본 것이 언젠지 모르겠다. 감사했다는 말이 많았다. 혼자 집에서 보면서 울컥했다. 팬들 없이는 프로야구도 없다.
○나를 미워했던 팬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는데? -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다. 악플도 관심이다. 그분들도 나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그러시지 않았겠나. 내 팬이 아니어도 야구팬이지 않나. 야구팬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은퇴를 가장 아쉬워한 동료는? -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싶다. 투수 조장으로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정말 많이했다. 모든 선수들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뛰던 (김)현수, (양)의지, (이)원석이 등도 다 연락이 왔다. 후배들을 왜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선배들에게 한 마디? - 선배님들을 보며 배웠다. 선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두산도 없다. 두산의 끈끈한 문화도 배웠다. 내가 보고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었다. 후배들도 그걸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태형 감독이 따로 한 말이 있나? - 너무 고생했다고 하셨다. 좋은 기억도 안좋은 기억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아들처럼 챙겨주셨다. 감독님과 함께 우승했고 커리어하이 시즌도 보냈다. 감독님이 계셔서 이 자리도 있다. 많이 아쉬워하시더라. 앞으로 인생도 멋지고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가장 뿌듯했던 것은? - 8년 연속 10승과 100승이다. 그걸로 편견을 깨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나 혼자 이룬 기록은 아니다. 팀과 함께한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팀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야구 인생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 그라운드에서 항상 유쾌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두산 베어스를 사랑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이제 은퇴하지만 팬들이 후배들과 두산, 프로야구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야구 인기가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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