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에만 실적 알린 '황제주' LG생활건강, 내달 불성실공시법인 결론난다

정해용 기자 2022. 1. 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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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보고서 쏟아진 날 주가 13% 급락
공정공시 위반으로 소액주주들 거센 반발
미국에선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감

한국거래소가 일부 증권사 연구원에게만 실적 정보를 공개한 LG생활건강(051900)에 대해 다음 달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성실공시법인은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뒤늦게 공시하거나, 특정인에게만 공시하는 등 투자자에게 혼란을 준 기업이 지정된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당일 매매가 정지되고, 향후 추가로 비슷한 경우가 누적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보통은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많이 지정된다.

LG생활건강은 주당 100만원이 넘어 황제주로 꼽혔던 기업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면세점 매출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실적 공시 전 일부 증권사 연구원에게만 제공했고 이 사실이 언론 보도와 한국거래소 확인으로 드러났다.

거래소는 특정 증권사 연구원들에게만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매도 리포트가 쏟아졌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만큼 LG생활건강의 행동은 중대한 공시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LG생활건강이 기본을 지키지 못한 행태를 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거래소는 내달 중 LG생활건강에 대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최근 4년간 유가증권 상장법인 중 불성실공시법인에 선정된 곳은 54곳이며, 이 중 대형사는 네이버(NAVER(035420)·2018년 8월 14일 지정)가 유일하다.

서울 광화문의 전광판에 LG생활건강이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만든 광고가 게재 돼 있다. / 조선DB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 17일 LG생활건강이 면세점에서 12월 매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증권사 연구원들에게 공시 전에 전달한 사실을 확인하고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거래소는 오는 26일까지 LG생활건강에 경위서와 이의신청을 받는다.

거래소가 문제 삼는 부분은 공정공시(Fair Disclosure) 위반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설명회(IR) 등 공식적으로 실적을 발표하기 전에 특정인에게만 실적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공정공시 위반으로 제재하고 있다. 실적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안 사람들만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해서 이익을 취하고 이 정보를 접하지 못한 다른 투자자들은 주가 변동에 따른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의 실적이 악화했다는 것을 일부 시장 참가자들만 미리 알았다는 것은 실적 악화를 예고한 리포트가 발간되기 전에 일부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 수 있었다는 의미다. 주가 하락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액주주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LG생활건강의 경우도 공정공시 위반에 해당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연구원에게 제공된 정보가 리포트 작성으로 이어졌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가벼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아직 경위서를 받아보지 못했기에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투자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거래소는 LG생활건강이 이번 사안이 공정공시 위반이 아니라며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10일 이내에 상장‧공시위원회를 개최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는 내부 심의를 거쳐 결론을 내린다. LG생활건강은 이의신청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거래소는 늦어도 다음 달 중 LG생활건강에 대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시장에 미친 영향이 큰 사안이라 거래소가 LG생활건강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이은현

LG생활건강에 대해 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불공정한 공시행태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이 일부 연구원에게 면세점 실적을 알린 후 지난 10일 개장 전 7개 증권사가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증권가 전망치(컨센서스)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이날 주가는 13%가 넘게 급락했다. 전날 110만4000원이던 주가는 95만6000원으로 13.41% 하락했다. 시총은 17조2424억원에서 14조9309억원으로 하루 만에 2조3115억원이 줄었다. LG생활건강 시총이 15조원을 밑돈 것은 지난 2017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현재도 96만원 대에서 거래되며 100만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주주는 “기업실적이 감소할 수도 있지만,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경우면 IR(기업설명회)로 투명하게 시장에 알려야 한다”라며 “이건 기본인데 이걸 안 하고 주주들이 뒤통수 맞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라고 했다.

다른 투자자는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불공정하게 공시를 해 주가를 떨어뜨렸다면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실적 정보를 미리 줘서 주가 폭락을 초래한 것은 소수 기관과 외국인들이 먼저 매도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주주평등권을 침해한 행위”라며 “회사가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 변호사는 “공정공시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보이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적 정보를 미리 안 일부 투자자가 이를 활용해서 미공개정보 이용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소액 주주 등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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