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줘도 안 팝니다"..스니커즈 덕후들의 전시 '넥 브레이커즈'

최보윤 기자 2022. 1. 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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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즈 전시/호아드 갤러리

농구 레전드 마이클 조던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1985년판 에어조던 1 시카고’, 얼마 전 유명(幽明)을 달리한 천재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친필이 적힌 ‘나이키 에어포스1 로우 오프화이트, 영화 ‘백투더퓨처’(1985) 속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제이폭스)가 30년 뒤 시간 여행 할 때 신었던 운동화를 재현해 내놓은 한정판 ‘나이키 맥’….

스니커즈(sneakers·운동화) ‘덕후’들 사이에서도 평생 실물 한 번 제대로 보기 어렵다는 ‘희귀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떤 제품은 한족에 1억원을 호가한단다. 초고급 세단 자동차 한 대 가격에 맞먹는 수준이라니, 실재하는 이야기인가 싶다. 해외 경매 뉴스 등에서나 등장하던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클 조던 친필 사인 슈즈/호아드 갤러리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호아드 갤러리에서 무료로 열리는 ‘아트 스니커즈+넥 브레이커즈(Neck Breakers)’ 전시회에서다. 국내에서 일명 ‘스니커헤드’(sneakerhead·스니커즈 수집가이자 마니아)로 손꼽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스니커즈 문화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보물’을 기꺼이 대중에 선보인 것. ‘넥 브레이커’는 ‘환상적으로 멋지다’는 영어 표현.

흔히 멋진 남녀가 지나갈 때 목이 돌아갈 정도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모습에서 나온 속어로, 눈에 띄는 신발을 가리키기도 한다. 신은 이들의 발을 보느라 고개가 꺾인다는 얘기다. 지난해 영국 디자인 뮤지엄에서 스니커즈의 역사와 예술성, 과학성을 선보이는 ‘스니커즈 언박스드’ 전시회가 큰 인기를 누리면서, 국내에서도 스니커즈 문화를 알리자는 마니아들이 손을 잡았다.

스니커 덕후 중의 덕후들이 엄선해 내놓은 100여점을 한 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홍보 없이도 팬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14일 문을 연 이후 조금씩 발길이 이어지면서 지난 주말엔 1000여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어린 시절 마이클 조던 경기를 보면서 그의 운동화를 갖고 싶어했던 X세대(1990년대에 20대였던 1970년대)에겐 로망과 추억을 되찾아주고 있다는 평.

1982년 나이키 에어포스 1에서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지난 30년간 스니커즈 역사를 되짚는 이번 기획을 통해 MZ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에겐 생소했던 제품을 실제로 보는 기회도 됐다. 당시 뒷이야기 해설까지 곁들여 예술적, 기술적 발전을 이룬 과정을 설명한다. ‘독도 사진’으로 잘 알려진 김우일 사진작가가 스니커즈를 찍어 마치 패치워크(붙임조각)처럼 표현한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신고 다니며 ‘이동’을 책임지는 운동화가 소장가치 있는 작품이자 예술로 구현되는 ‘작품’으로 진화하는 것을 은유한 것이다.

1층 ‘아트 스니커즈 홀’에서 특히 화제가 된 제품은 ‘1985 에어조던 1 시카고’. 마이클 조던의 친필 사인이 신발 양측에 모두 기재돼 있다. 호아드 갤러리 측에 따르면 “소유자분에게 얼마 전 1억원에 팔라는 제안이 왔지만 팔지 않았다”면서 “소유자분이 제품의 역사적 가치를 굉장히 중히 여겨서 그 의미를 알리기 위해 이번 전시회에 대중에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베이에는 조던 사인이 한쪽에만 돼 있는 ‘나이키 에어 조던 1 OG 시카고 플레이어 샘플’ 제품이 25만달러(2억 9782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베이에서 3억원에 낙찰된 1985 에어조던1 제품/이베이 캡쳐
이베이에서 3억원에 낙찰된 1985 에어조던1 친필 서명 제품/이베이 캡쳐

1984년 미 프로농구(NBA)에 시카고 불스에 입단하며 데뷔한 조던은 그의 신인(루키) 시절 5번째 경기서 신은 나이키 에어십 농구화가 지난해 소더비 옥션에서 17억원에 경매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나이키가 특정 운동선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출시한 건 마이클 조던이 처음. 조던이 신었던 ‘에어십’은 기존 ‘에어’ 제품에 ‘조던’을 붙인 ‘에어 조던 1′ 출시를 준비하면서 조던에게 제공한 한정판이었다. 이듬해 ‘에어 조던 1′이 정식 출시되면서 ‘전설의 시작’이라는 애칭도 따라붙었다. 마이클 조던은 하늘을 나는 듯 덩크를 꽂아넣었고, 나이키의 매출 역시 조던 처럼 고공행진했다.

2층에 있는 ‘넥 브레이커스’ 전시는 국내 스니커즈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인 ‘스택하우스’와 협업해 기획됐다. 스택하우스는 2017년부터 스니커즈 마니아들을 위한 오프라인 축제인 ‘스니커하우스’를 여는 곳이다. 스니커즈 마니아들끼리 제품 정보를 얻거나 공연을 여는 등 스트리트 문화를 아우르는 축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2층에선 1982년 나이키 ‘에어포스1′에서부터 최근 제품까지 시대별 주요 제품을 선보인다. ‘나이키 맥’의 경우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등장한 신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제품으로, 파킨슨 병 진단을 받은 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 연구 재단을 위한 기금 모음으로 2011년 1500족이 발매됐다. 당시 경매로 470만달러(현재 약 55억원)이 모여 파킨슨 병에 대한 연구를 위해 기부됐다. 이후 나이키 측은 2015년 영화 속 오토레이싱 기능을 더 넣어 기부 발매하게 된다.

김우일 사진작가의 사진 작품도 함께 전시된 공간/호아드 갤러리

스니커즈가 최근 몇 년 사이 수집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리셀(resell·되팔이)족의 대표 품목으로 떠오르면서 ‘스니커 테크(스니커즈+재테크)’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일단 사둔 뒤 되팔면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특히 넷플릭스 조던 다큐 ‘더 라스트 댄스’(2020)이후 조던과 관련된 문화 상품에 대한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또 오프화이트와 루이비통 남성복을 이끌었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지난해말 암투병끝에 41세란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그가 디자인했던 제품 역시 가치가 치솟고 있다.

김우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버질 아블로 친필이 담긴 나이키 에어포스1 오프화이트 제품. 버질아블로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그가 하버드에서 초청 강연 했을 때 선보이며 설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측에선 버질 아블로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작품을 선별하고 추모사를 담기도 했다. /호아드 갤러리

백화점 ‘오픈런’(제품 구매를 위해 문 여는 시간까지 줄서서 기다렸다 뛰어들어가는 것)에 위험천만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광풍까지 연출됐다. 이러다 보니 과거 부동산 ‘떴다방’ 등 투기에 가까운 ‘묻지마 투자’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번 전시회를 연 호아드 갤러리 조창호 대표는 “스니커즈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닌,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의 매개체이자 소장가치 높은 예술작품으로서 갖는 의미를 되살리고 함께 즐겨보자는 의미로 기획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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