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EP2022]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17개 과제는 모두 장애인 배려문제입니다."

이창훈 2022. 1. 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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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 취재차 방한 UN 소속 박준 프로듀서
"이틀간 같이 생활해보니 상상력과 창작법 남다르고 배려심 많아"

기자로서 같은 미디어 분야 종사자를 인터뷰하는 일은 드물다.

인터뷰이인 박준 PD는 세계최대 국제기구 유엔(UN)의 비디오·뉴스앤미디어 섹션 소속으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열흘간의 자가격리 불편을 감수하면서 한 달 일정으로 방한한 것은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ACEP 2022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격리기간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한 달이라니?

취재비용이야 유엔의 공익적 성격상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만큼의 장기취재가 필요한 주제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격리를 끝낸 후 최근까지 이번 특별전에 출품한 박혜신, 권한솔 작가의 집을 찾아가 이틀씩 같이 생활해 봤어요. 그 분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창작과정을 직접 보면서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런 과정이 필요했거든요.”

순간 죽비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박준 유엔 비디오·뉴스앤미디어 섹션 PD가 `ACEP2022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랫동안 취재와 인터뷰를 해왔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어떤 목적에서 박 PD의 장기 심층취재 계획을 승인한 걸까?

“유엔이 추진하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빈곤과 질병, 고용, 교육 등 17개 과제가 설정돼 있습니다. 2016년 시작돼 2030년까지 이행한다는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세부적인 목표들을 설정하고 추진하다보니 17개 과제 모두 마무리 단계에서 장애인 배려라는 문제를 만나게 되더군요. 유엔이 각국의 장애인 지원 정책과 실태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유엔은 지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된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를 종료하고 지속가능개발목표를 국제사회가 실현해야 할 새로운 핵심가치로 설정했다.

지속가능개발목표 또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인류 보편문제(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와 지구 환경문제(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 경제 사회문제(기술, 주거, 노사, 고용, 생산 소비, 사회구조, 대내외 경제) 등 3개 분야를 17개 대과제, 169개 소과제로 분류하고 국제사회 각국이 협력해서 공동 해결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지속가능개발목표 17개 대과제의 공통분모가 바로 장애인 문제라는 것이 서울에서 열리는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 취재에 박 PD를 특파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17개 대과제를 표현한 픽토그램.

“2020년 유럽연합(EU)과 한국의 교류전 형태로 열린 제1회 ACEP 전시회가 유엔웹TV(UN Web TV)에서 그해 12월2일 중계한 믹타(MIKTA;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여하는 국가협의체) 정기회의 개막 프로그램으로 방송됐어요. 그때는 한국에서 제작한 영상만 업로드했는데 유엔에서 의미있는 행사라고 판단해 현지 취재를 결정한 것이죠.”

박 PD는 유엔의 여러 협의체와 기구에서 논의하고 있는 장애인 문제의 핵심을 의미심장한 맥락으로 표현했다.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할 어떤 상태가 아니라 사회가 언제나 동행하는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돼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가져야 할 장애인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라 봅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밝혔어도 그 사실이 큰 파문을 일으키거나 누구도 그를 비정상적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발달장애 중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대화를 원만히 이끌어나가지 못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도 장애를 안고 있는 분들이 대법관이나 교수, 고위공직자가 된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러나 그들을 ‘인간승리’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그렇다고 우대받지도 않는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해 성취한 것을 특별한 시각으로 볼 이유가 없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장애인의 기회 균등이란 그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영역이고 그렇게 해서 이뤄진 성공 스토리는 개인의 승리라기보다 사회의 성취라 해야겠죠.”

물론 박 PD가 말하는 기회 균등이 기계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의 실현을 위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고용과 교육, 정보접근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의 소수인 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돌아보고 같은 기회를 부여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박 PD는 서울 화곡동에서 나고 자라 15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후 뉴욕대(NYU)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고 소개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공통가치를 추구하는 영상 콘텐츠 제작이라는 뜻깊은 일에 종사하게 된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계실 때 기술직을 지원해 유엔에 합격했는데 8년 동안 근무하면서 여러 번 뜻하지 않은 반전이 있었어요. 결국 영화라는 전공을 살려서 프로듀서로 일하게 됐습니다.”

박준 PD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와 장애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박혜신, 권한솔 작가의 집을 찾아가 이틀간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무척 인상적인 특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무척 창의적인 청년이에요. 예컨대 ‘권’이라는 글자를 쓸 때 우리는 자음 ㄱ 과 모음 ㅜ, ㅓ에 이어 자음 ㄴ을 쓰지만 그는 글자의 가로 획과 세로 획을 분류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구성하고 표현해 내요. 그가 그런 특별한 발상을 갖게 된 것은 비장애인과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봐요.”

박 작가에게서는 남달리 따뜻한 마음을 봤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유달리 깊었어요. 그런 성정이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됐고 그림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것이겠죠.”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토록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그의 접근 방식에서 받은 충격을 토로했다. 한국 언론이 속보경쟁에 치우치다 보니 호흡이 길고 깊이 있는 취재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현실도 개탄했다.

“국제기구에서 여러 나라의 현황과 문제점을 관찰하는 직업 특성상 모국인 한국도 객관적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한국은 무엇이든 빨리 하는 편이지만 그 결과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것에 늘 감탄합니다. 한국인들이 모든 일에 좀 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가 이번에 취재한 내용은 언제쯤 영상으로 만날 수 있을까.

“취재 결과가 뉴스앤미디어섹션과 공유되면 유엔웹TV 외에 유엔 공식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소개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제작하는 한국의 발달장애 특별전 다큐멘터리는 ‘세계 자폐 인식의 날(World Autism Awareness Day)’인 오는 4월2일을 앞두고 유엔웹TV의 ‘유엔 인 액션(UN in Action)’ 코너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유엔의 6개 공식언어로 번역돼 세계인 다수가 볼 수 있을 겁니다.”

'ACEP2022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은 매경미디어그룹, (사)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휴먼에이드포스트가 공동 주최하며, 매경비즈와 비채아트뮤지엄이 주관한다.

지난해 ‘피카소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주목받은 비채아트뮤지엄측은 수개월 전부터 박 PD와 취재 및 촬영 스케줄 등을 긴밀히 협의하면서 한국의 발달장애인 배려 현황을 세계에 알리는 영상 프로그램 제작 지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글 이창훈기자/사진·영상=손성봉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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