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행기를 처음 타봐요"

칼럼니스트 김재원 2022. 1. 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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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28. 말 한마디 건네는 것에 용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 칼럼은 어제 김포에서 제주로 내려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청춘과 오래전 여행자였던 나의 이야기다.

여행 중 만나는 낯선이의 다가옴을 항상 경계할 필요는 없다. ⓒ김재원

한 젊은 여성분(여자분들의 나이를 어느 순간부터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여성분이라는 의미는 그런 측면에서 내 기준에 젊게 보였다는 의미다)이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배낭을 짐칸에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뒤로 승객들이 줄줄이 타고 있던 참이라 얼굴은 빨개지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아 짐을 올려드리고 나니 마침 또 내 옆자리 승객이었다. 

"감사합니다."

수줍은 감사 인사에 나는 눈인사로 대신 화답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런데 다시 그분이 내게 뭐라고 말을 하는 듯싶어 황급히 이어폰을 뺐다.(이어폰을 꽂고 있는 누군가에게 다시 말을 건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저기요 제가 오늘 비행기를 처음 타봐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순간 한 10초 정도 나도 모르게 멀뚱히 그분을 쳐다봤다.

'이분이 조금 경계선에 있는 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요즘 같은 세상에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 있는가? 그것도 젊은 분이?'라는 생각도 스쳤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잠시 침묵했던 그 10초 동안 그 여자분의 눈빛을 집중적 그리고 뚫어져라 살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도 아마 당황하셨을 듯)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뭔가 부족한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시는군요. 일단 안전벨트를 매시고요. 승무원들이 교육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세요. 그리고 불편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핸드폰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 비행기가 이륙하면 비행기 모드로 바꾸시고 사용하시면 돼요(웃음)" 

환한 미소와 함께 "네 감사합니다"로 답할 때 표정을 살펴보니 본인 옆자리에 비행기를 많이 타본 듯한(?) 아저씨가 있다는 것에 매우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 이후 제주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다행히 아무 일도 벌어지진 않았다.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니 비행기 창밖 풍경을 연신 카메라로 찍으며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알려줄 일이 발생하지 않아 그분의 첫 비행의 기억은 순조롭게 끝난 듯 싶어 나도 되려 안심이 되었다. 

도착 후 다시 짐을 내려주고, '즐거운 여행이 왜라'라는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건넸다. '왜 제주에 왔는지 와서 무엇을 할는지' 묻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이기에 그마저도 조심스러웠고 너무 주제넘은 질문 같아 하지 않았다.(그래도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올 걸 하고 후회했다.) 

체코 프라하. ⓒ김재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20년 전 처음 세계여행을 떠났던 그 시절이 떠올려졌다. 

정말 그때는 배낭 하나 메고 외국 국적의 비행기에 오르면 신혼여행객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나같이 비행기를 처음 타봤거나 외국 국적의 비행기를 처음 타서 긴장과 약간의 공포감을 느끼는 티가 얼굴에 한가득인 분이 많았다.

한국 분들은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키보다 높은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입장하는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내가 그분들께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멀리 이국 땅에서 만나도, 하늘 위 비행기 안에서 만나도 서로가 한국 사람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프랑스 남부 '아를'의 골목. ⓒ김재원

어떤 분들은 혼잣말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저 사람 한국 사람인 것 같아 빨리 말 걸어봐'라고 다른 사람을 닦달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매번 그 간절한 눈빛과 외침을 외면하지 못하고 말을 건넸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죠? 도와드릴 일이 있으실까요?"

그러면 나를 만나기 전부터 있었던 고충과 동행했던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하소연, 앞으로 닥칠 예상되는 어려움 등에 대해 토로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그분들에게 나는 마치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김재원

때로는 출입국 서류를 대신 작성해 주기고 하고, 숙소를 알아보는 방법이나 현지에 도착해서 택시나 대중교통을 타는 방법 등을 알려주곤 했다. 관광 루트를 짜주기도 하고 이동 경로에 필요한 예약을 대신해주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과감히 본인들의 일정을 조정해 나를 따라다니겠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실제로 도착한 나라의 입국장에서부터 내 뒤로 열댓 명의 한국분이 줄줄이 따라오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의 야경. ⓒ김재원

그 시절은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여행 가이드북도 유명한 나라가 아니면 없던 시절이라 누가 봐도 거지꼴에 대학생 앳된 얼굴을 가진 나였지만, 나에게는 뭔가 정보가 있을 것 같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포스(?)가 느껴졌던 모양이다. 

한참 동안 어떤 문제를 해결 혹은 청취해 준 것에 대한 보상도 확실했었다. 한국 과자나 비상식량을 나눠주시거나 어떤 분은 여행경비에 보태라고 소정의 돈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꼭 '다시 서울에서 만나자'라는 말과 함께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곤 했다.(물론 다시 서울에 가서 연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영국 런던. ⓒ김재원

어제 일과 오래전 일을 떠올리며  

우린 지금 모든 것에 있어서 익숙해진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곁엔 여전히 무언가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과 마음의 여유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런 분들이 말 한마디 건네는 것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되진 않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들었는데요. 독자분들과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겨우 이 결론의 말을 전하려고
글을 이렇게 길게 쓰다니. 
작가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군요.

마음 따뜻한 독자님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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