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햄릿' 같은 시즌..홍창기-정은원, '때려야하나, 참아야하나'
[스포츠경향]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새 시즌 출발선에서의 가장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적응훈련에 들어간 KBO 심판위원들이 원안대로 판정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우선 지켜봐야할 일이지만, 선수 대부분이 적어도 시즌 초반까지는 추이를 예의주시해야 상황이다.
스트라이크존 확대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선수도 보인다. KBO리그에서 가장 ‘눈’이 좋은 두 선수다.
LG 홍창기(29)와 한화 정은원(22)은 지난해 ‘눈야구’로 KBO리그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지난 시즌 홍창기와 정은원은 고의4구를 제외한 순수 볼넷 순위 1,2위에 올랐다. 홍창기는 109개, 정은원은 105개를 기록했다. 대개 시즌 볼넷 1위는 상대투수가 알아서 피해가는 거포들의 몫이지만, 둘은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먼 유형임에도 특출난 선구안으로 리그 역사에서도 두드러진 볼넷 기록을 남겼다.
둘 모두 타석 앞에서부터 고민하는 시즌일 수 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햄릿의 독백처럼 둘 모두 ‘때려야하나, 말아야하나’라는 결정적 기로에서 갈등할 수 있다.
정은원은 조금 더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정은원은 리그에서 스윙을 가장 아끼는 선수다.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이 27%로 리그에서 가장 높다. 리그 평균 17.5%와도 간격이 크다. 타석당 투구수 역시 4.47개로 1위에 올라 있어 리그에서 볼을 가장 많이 보는 선수이기도 했다.
한화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정은원은 이미 스트라이크존 확대에 따른 변화를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자칫 지난해와 다른 없이 접근했다가는 볼카운트만 불리해지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이에 조금 더 방망이를 내는 횟수를 늘려 공격적인 면을 살리는 데 무게를 두고 시즌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홍창기는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 21%에 타석당 투구수 4.17개로 정은원보다는 조금 더 빨리 승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투수가 볼을 놓는 순간, 감각적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짓는 ‘자기 선구안’이 보다 명확한 선수이기 때문에 새 스트라이크존 적응까지 과도기를 겪을 수 있다. 그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올시즌 홍창기의 승부처일 수도 있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에도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내는 ‘배드볼 히터’들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시즌일 수 있다. 그러나 둘은 ‘배드볼 히터’들과 달리 볼을 고르고 또 골라치는 타자들이다. 눈이 정확한 만큼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에 심판위원들이 구축해갈 새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궁금증이 누구보다 클 수도 있다.
지난 시즌 류지현 LG 감독은 홍창기의 눈을 통해 상대 투수를 평가하기도 했다. 홍창기가 특정 투수의 변화구에 속아 헛스윙이라도 연달아 할 때면 해당 구종에 대한 가치를 다시 보기도 했다. 정은원 역시 구단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다.
홍창기와 정은원은 나름 확고했던 스트라이크존 설정을 다시 하며 ‘눈의 피로’가 가중되는 시즌을 보낼 수 있다. 타석 앞 뒤에서 이들과 만나는 주심들은 역시 조금 더 긴장하는 시간일 수 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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