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된 유대인'이라는 발명품'

조일준 기자 2022. 1. 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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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유대인'이기를 그만둔 학자의 시오니즘 뒤집기 <만들어진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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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기원전 13세기 ‘출애굽’은 유대인이 “위대한 문화중심지에서 혈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만들어낸 신화”였다. 당시 가나안은 여전히 파라오가 통치하는 이집트 땅이었다. ②기원전 6세기 유다왕국의 멸망 뒤 ‘바빌론 유수’ 때 끌려간 이들은 엘리트 지배층 극소수였으며, 그나마 대다수는 해방된 뒤 귀환 대신 남는 쪽을 택했다. ③기원후 1세기 로마에 항거해 일어난 유대전쟁 뒤에도 유대인 강제추방은 없었다. ④7세기 이후 이슬람 지배하에서도 토착 히브리 농민이 땅을 버린 일은 없었다.

이처럼 과감한 주장은 학계에서 비교적 알려졌지만 대다수 유대인에겐 믿음이나 상식에 반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슐로모 산드(75) 텔아비브대학 종신교수의 문제작 <만들어진 유대인>(김승완 옮김, 사월의책 펴냄)이 원저(2008)가 나온 지 13년여 만에 우리말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산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폴란드계 유대인 후손으로, 2살 때인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충격받았다. 그 뒤 배타적 ‘선민’으로서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를 격렬히 비판하고 유대인 정체성 신화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 학자로 유명하다. 산드의 저작 중 이 책의 속편 격인 <유대인, 불쾌한 진실>(2013년, 원제는 ‘나는 어떻게 유대인이기를 그만두었나’)이 앞서 2017년에 먼저 우리말 번역본(훗 펴냄)으로 나왔다.

산드는 유대인이 “발명된 민족”이라고 단언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저자는 전세계에 퍼진 ‘유대인’과 유대민족주의를 치밀하게 고증하고 진실을 추적한다.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지역에서 태동한 일신교를 앞장서 채택한 히브리인의 선진적 신앙체계가 지중해 세계의 원시 다신교문화에 빠르게 파고들었던 게 시작이다. 이어 중근동 지역 유대교 왕국들의 활발한 개종 활동으로 그리스 이름을 가진 유대교인이 대거 출현했다. 8세기 초 아랍인의 스페인 정복 때 들어간 유대교는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세파르딤’ 유대인의 기원이 됐다. 동쪽 코카서스(캅카스) 평원에선 유대왕국 하자르가 동유럽 유대인 ‘아슈케나지’의 뿌리가 됐다. 아슈케나지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의 핵심이었다.

산드는 “민족이 만들어진 곳 어디서나 민중은 발명됐고 장구한 내력과 역사적 기원을 부여받았다”며, 오늘날 이스라엘이 자신을 이스라엘 시민이라는 집합체의 소유가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을 경고한다. “진실에 눈감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한때 풍부한 상상력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사회를 창조하게 한 역사적 신화가 이제 이 사회의 붕괴 가능성을 높이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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