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적은 것이 아름답다, 집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

한겨레 입력 2022. 1. 20. 10:06 수정 2022. 1. 21. 10: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 너도 한번 지어봐]너도 한번 지어봐: 마감재
집짓기 가장 중요한 과정
많은 것 덜어내려 하면서도
원하는 스타일 분명히 할 것
시각적 피로를 줄이고 편안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마감재의 가짓수를 서너개로 줄이고 색감을 통일하면 만족도가 올라간다. JUNLEEPHOTOS 제공

집의 뼈대를 세우는 전통적인 재료로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돌, 흙, 나무, 벽돌 따위가 있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근대에 들어서 철과 시멘트 콘크리트 등이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라니 앞으로 또 어떤 기술과 재료가 더해질지 궁금해진다.

여러 재료를 혼합해서 건축물을 세울 때 각각의 물질적인 특성을 잘 이해하고 고르는 것은 건축가와 시공자의 몫이다. 특히 기존의 낡은 집을 수리하고 덧대는 대수선공사라면 원래 자리잡고 있던 재료와 새로 덧붙이는 재료의 물성 차이로 구조적 결함이나 뒤틀림이 생기지 않도록 계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찾는 일

디자인이나 마감재는 얘기가 좀 다르다. 안전한 구조와 기술적인 필요와는 별개로 건축주는 최종 사용자의 입장에서 내외장 디자인과 마감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고 숨 쉬며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오랫동안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마감재를 고르는 것은 집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라는 근대 건축가가 남긴 명언이 있다.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적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간결하고 직선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설계를 의뢰하기 위해 건축사 ㅎ소장을 만나 처음에 꺼낸 얘기가 바로 최대한 단순명료한 디자인이었다. 기능을 위해 꼭 필요한 돌출 이외에는 매끈하고 평면적인 외부 입면과 내부 공간을 원했고 집의 외형과 내부 설계 과정에 그 주문이 대부분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각적 피로를 줄이고 편안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마감재의 가짓수를 서너개로 줄이고 색감을 통일하면 만족도가 올라간다. JUNLEEPHOTOS 제공

너무 무겁거나 구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건축주는 여러 선택지 속에서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하게 된다. 먼저 내가 어떤 디자인과 느낌을 좋아하는지 정리해보자. 사진이나 그림같이 시각적으로 참고할 만한 것이 있으면 좋지만, 짧은 글이나 단어로 메모해보는 것도 괜찮다. 따뜻한 나무 느낌을 선호한다든지, 깔끔한 타일이 많으면 좋겠다든지, 차가운 금속성의 재질을 원한다거나,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디자인이나 아치형의 통로가 있으면 좋겠다든지,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가 드러나게 해달라든지. 어떤 것도 상관없다. 노련한 건축가들은 의뢰인의 요구를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내가 무엇이 좋은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깊은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건축가의 조언을 구하자. 건축주는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신중하게 그의 작업들이 정리된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심리적 공감대를 만든 뒤에 건축가를 섭외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만약 뒤늦게 새로운 스타일을 원한다면 명확하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냉정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감성이나 디자인 철학과 맞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또한 건축가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한가지만 유념하도록 하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정리해 전달하기 전에 상반되는 표현이 없는지 잠시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가우면서 따뜻한 느낌, 부드럽게 물결치는 직선, 심플하고 화려한 장식, 정열적인 무채색 따위는 당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 세계에는 없는 것들이다. 이런 요구를 전달받은 디자이너, 건축가의 멘탈은 잠시 머나먼 우주여행을 떠나겠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당신에게 다시 물어볼 것이다. “정확히 어떤 걸 원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두세가지 디자인 요소와 마감재를 혼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른바 ‘믹스 앤 매치’다. 차가운 회색 콘크리트나 낡은 벽돌벽 위에 거칠게 페인트를 칠하고 식물로 꾸민 카페에서 느껴지는 멋스러움이 좋은 예다. 내가 만드는 공간이 협소하다면 네가지 마감재를 넘기는 것을 조심하고, 넓은 공간이어도 여섯가지 이상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열가지를 넘기는 것은 금물이다. 여러가지 스타일과 화려한 색상, 다양한 마감재를 쓴다면 오래 지나지 않아 시각적 피로감이 몰려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미스 반데어로에의 말을 기억하자.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낫다.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웹사이트나 브로슈어로 앞서 작업했던 것들을 미리 살펴보면서 내가 원하는 느낌과 비슷한 집을 만든 건축가를 섭외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한은지건축사사무소, 윤경미 제공

색상과 느낌을 통일하다

설계가 끝나갈 무렵 ㅎ소장은 나에게 두툼한 ‘스펙북’을 전해주었다. 내가 원하는 느낌을 반영해 내외장재의 사양과 색상, 제작 가구류(주방 상하부장, 아일랜드 식탁, 화장대 등), 도기류(타일과 화장실 제품 등), 조명, 바닥 마감재 등의 디자인과 샘플 사진, 가격표 등을 정리해 책자 형태로 묶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대로 두고 몇가지는 바꾸기로 했다. 예산을 고려해 비싼 것은 비슷한 느낌을 내면서 저렴한 것으로 변경하고, 직접 발주하면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시공 일정에 맞춰 도착하도록 주문했다. 우리 집은 외벽에 밝은 아이보리색 스타코플렉스(고탄성 외장재)를 발라 마감하고 지붕과 일부 벽은 징크패널(아연판)로 덮었다. 1층 현관문과 상업 공간의 외벽, 창호 외부 프레임, 징크패널은 각각 다른 소재를 썼지만 짙은 회색에 가깝게 비슷한 색상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내부의 벽과 천장은 모두 석고보드 위에 외벽과 비슷한 밝은 아이보리색의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했다. 미닫이문과 창문의 블라인드도 같은 색으로 통일했다. 바닥재, 계단, 계단실에 설치한 붙박이 책장, 슬라이딩 도어, 주방 벽면 선반, 아일랜드 식탁의 테두리는 연한 자작나무를 기준으로 비슷한 색감을 맞추었다. 1층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의 바닥을 같은 타일로 하고, 주방과 각 화장실의 벽면에는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동일한 타일을 수직으로 세워 붙이기로 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가구들도 새집과 어울리는 색상이어서 이사하면서 새로 장만해야 할 것은 없었고, 수납 공간을 충분히 많이 만들어놓아서 낡은 수납가구 두어개는 중고장터에 팔기로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끝나가고 붙박이로 설치할 가전제품이 도착하면서 입주일이 다가왔다.

임호림(어쩌다 건축주)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웹사이트나 브로슈어로 앞서 작업했던 것들을 미리 살펴보면서 내가 원하는 느낌과 비슷한 집을 만든 건축가를 섭외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한은지건축사사무소, JUNLEEPHOTOS 제공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