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새해, 땅끝에서 빛을 맞이하다 ③태안 모항리

현경숙 2022. 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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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땅끝까지 가봤나. 북한 지역을 제외한 대한민국 육지의 동쪽 끝은 포항시 호미곶이다. 육지 최남단은 해남군 땅끝마을, 최서단은 태안군 모항리이다. 한반도의 땅끝은 맑고, 따뜻하고, 활기찼다.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모항항[사진/조보희 기자]

한반도 최서단 항구, 태안 모항항

미국프로야구 '전설의 포수'로 불리는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끝이 마지막이 아닐 때도 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요 열림이고 연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서쪽 땅끝은 바다였다. 바다는 육지 문명이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인류의 생활 무대였고 개척 대상이었다. 큰 잠재력을 지닌 자원의 보고여서 인류의 미래라고도 한다. 누구는 전체 표면의 약 70%가 물인 지구를 '수구'(水球)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표면이 모두 물로 덮이지 않은 것은 땅의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땅끝이 내몰림의 위태로운 장소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삶의 지평과 인식의 확장이리라.

한반도 땅끝까지 가봤는가. 북한 지역과 부속 도서를 제외한 대한민국 영토에서 동쪽 끝인 포항 호미곶,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을 돌아 서쪽 끝인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까지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뭘까. 모항리에는 한반도 최서단 항구인 모항항이 있다. 모항항은 우럭, 꽃게, 넙치, 붕장어 등이 많이 잡히는 어항이다. 우럭 낚시터로 유명하다. 큰 항구는 아니지만, 어업이 성해 활력이 넘치고 대피항 역할을 톡톡히 해 태안군에 있는 3개 국가 어항 중 하나이다.

'모항'(茅項)은 마을에 볏과 식물인 띠가 많이 자라고 지형이 목처럼 잘록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었던 '띠목'의 한자 말이다. 만이 발달한 모항리에는 금빛 고운 모래로 유명한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3㎞, 폭 250m, 면적 20만㎡에 이르러 서해안 최고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전망 타워에서 본 만리포해수욕장[사진/조보희 기자]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해안가에 서 있다. 흥겨운 이 노래는 듣기만 해도 만리포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게 만든다. 실제 만리포를 방문하게 되면 만리포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백사장 위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한반도의 진주'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최근 완공된 만리포 전망 타워에 올라가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오션 뷰'와 '마운틴 뷰'가 온몸을 압도하는 듯하다. 멋진 명승 사진이 많다. 그러나 사진 속 풍경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과 자연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같지 않다. 눈의 호강과 자연의 숭고함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노래비 옆에 '정서진/대한민국 서쪽 땅끝'이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한국 영토의 중심과 끝을 정하는 방법은 꽤 여러 가지다. 남북한을 합해 한반도 땅과 바다 전체를 놓고 측량하는 방법, 남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방법, 바다를 제외하고 육지만 대상으로 측정하는 방법 등이다. 그때마다 국토의 중심과 끝의 위치는 달라진다. 서울 광화문 앞 도로 원표석 기준 정서진은 인천시 서구이다. 그러나 남한의 중앙인 충주를 기점으로 하면 정서진은 만리포가 된다.

이국적인 모습의 신두리 해안사구[사진/조보희 기자]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할미·할아비 바위까지

모항리를 중심으로 태안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절경이 펼쳐져 있다. 태안 해안치고 아름답지 않은 곳 없지만, 대표적 명승을 꼽자면 신두리 사구, 천리포 수목원, 몽산포 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 할미·할아비 바위, 안면 송림 등이다.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인 신두리 사구는 '한국의 사막'으로 불린다. 신두리 사구는 전체 길이가 3.5㎞이다. 이중 북쪽에 위치한 길이 1.5㎞, 최대 폭 1.3㎞ 구간은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태안에 모래언덕이 발달한 것은 겨울이면 몰아치는 강력한 북서 계절풍이 바닷가에 모래를 쌓이게 하기 때문이다. 신두리 사구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수십만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 높이 20m에 가까운 모래 언덕을 중심으로 전후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모래밭과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 무리,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소나무 방풍림이 어우러진 풍광은 흔치 않은 장관이었다.

꽃지해수욕장에 있는 할미ㆍ할아비 바위[사진/조보희 기자]

태안은 한국의 대표적 리아스식 해안이다. 손가락을 쫙 펼친 것처럼 해안선이 깊숙이 들락날락해 육지부와 도서부를 합한 해안선의 총 길이가 559.3㎞에 달한다. 이는 충남 전체 해안선 길이의 45%에 해당한다. 해수욕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공인된 해수욕장만 28개이다. 그러나 발만 담글 수 있으면 해수욕장이 된다고 할 정도로 좋은 해변이 널려 있다. 이는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라고 불리는 해수욕장들이 만리포와 신두리 사구 사이에 차례로 자리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청포대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몽산포 해변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미국 케이블 방송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한 꽃지 해변에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얽힌 할미·할아비 바위가 길손의 발길을 잡는다. 두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은 서해 최고의 일몰 풍광으로 꼽힌다.

몽산포와 꽃지는 태안 남부인 안면도에 있다. 안면도에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천혜의 적송 군락이 일품이다. 고려, 조선 시대에 궁궐을 짓거나 배를 만들 때 사용했던 안면 적송은 현재 충남도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엄격한 보존 덕분에 안면도 곳곳에서 잘 발달한 송림은 모두 3천500㏊에 이른다.

궁극의 '오타쿠'가 빚은 '천리포 수목원'

천리포 해변에는 사람이 자연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가질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웅변하는 곳이 있다.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귀화한 '푸른 눈의 한국인' 고(故) 민병갈(Carl Ferris Miller) 박사가 설립한 천리포 수목원이다. 민 박사는 한국전쟁 후 사재를 들여 매입한 천리포 해안 토지에 1만6천 종이 넘는 다양한 식물을 심고 일평생 가꾸었다.

'푸른 눈의 한국인' 고(故) 민병갈 박사가 설립한 천리포 수목원[사진/조보희 기자]

그 결과 염분 많은 박토의 민둥산이 한반도 자생식물과 60여 개국에서 들여온 희귀 식물이 자라는 세계적 식물원으로 탈바꿈했다. 천리포 수목원은 호랑가시나무, 목련, 동백나무, 단풍나무, 무궁화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최다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목련은 전 세계 1천 분류군 중 865 분류군을 보유하고 있어, 봄에 방문하면 다양한 목련꽃을 만나볼 수 있다.

민 박사는 한국인보다 한국의 자연을 더 사랑했다. 한국의 미와 그 가치를 한국인보다 더 일찍 깨달았다. "자연은 다 좋아요"라고 말했던 민 박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나무를 돌보고 수목원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민 박사는 궁극의 자연 사랑 '오타쿠'가 아닐 수 없다. 국제수목학회는 2000년 이 수목원을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했다.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 처음이었다.

천리포 해변은 또 하나의 귀한 유산을 환기한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를 극복한 경험이다. 2007년 12월 7일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삼성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해 1만900t의 원유가 새어 나왔다. 충남, 전남·북 해안이 오염됐으나 전국에서 자원한 봉사자 123만여 명이 한마음으로 방제 활동을 벌였다. 서해안은 기적적으로 되살아났고, 만리포 해수욕장은 사고 후 약 반년만인 2008년 6월 재개장했다.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감동한 세계는 방제 참여자들에게 세계자원봉사대회 자원봉사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비극과 그 극복 노력을 기억하려는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 천리포에 있다.

백화산 정상에서 본 태안 시내[사진/조보희 기자]

앗! 보물이다…태안 1경, 백화산

국내의 유일한 해안국립공원인 태안에는 130여 개의 섬, 수많은 해수욕장,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 리아스식 해안 등 비경이 즐비하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명승을 제치고 태안 1경으로 선정된 곳은 백화산이다.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하다는 백화산은 전국적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태안의 진산으로 지역 주민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탐방해보면 그 이유는 바로 알게 된다. 높이 284m의 아담한 백화산에 오르면 북쪽 인천 방향의 가로림만에서부터 서쪽인 중국 방면 바다, 남쪽의 천수만 일대, 동쪽인 서산, 동북쪽인 서울 방향까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 서면 광활한 바다와 아득한 산들, 평화로운 태안군 시내 전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국보인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사진/조보희 기자]

정상 가까운 곳에 태안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 있다. 역삼각형의 거대한 바위 면에 중앙 보살상과 좌우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했다. 당당한 신체와 강건한 얼굴, 묵중한 법의의 표현이 6∼7세기 백제 불상 양식을 나타낸다. 1966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불상의 연화 좌대가 추가 발굴된 뒤 2004년 국보로 승격됐다. 서산 마애삼존불상보다 덜 알려졌지만, 백제를 대표하는 보물이다. 백화산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자동차로 중턱까지 간 뒤 20분 정도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그곳에서 서해의 새로운 면모, 백제 예술이라는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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