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보다 눈에 띄는 이 나라의 '성평등' [아이슬란드를 가다②]

출국 전날까지 가시방석이었다. 2021년 10월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시 주춤하던 때였다. 백신접종이 본격화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출입국 정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잠시 열린 하늘길의 틈을 비집고 10월22일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젠더 정책에 대한 요구와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거대 양당 후보들은 젠더 문제에 무관심한 모습을 반복하거나 ‘문제’의 당사자가 되곤 했다. 취재팀이 향한 아이슬란드는 성평등이 구현되는 나라로 가장 손꼽히는 곳이었다. ‘성평등이라는 게 뭘까. 성평등 사회는 무엇이 다를까. 그러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치와 제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의 끝에서 한국 사회가 언젠가 반드시 도착해야 할 ‘미래’를 보고 싶었다.
취재를 준비하면서 들락거렸던 아이슬란드 정부 홈페이지에서부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코로나19 관련 정보 및 정부 대책을 모아둔 페이지에는 성평등 탭이 별도 마련돼 있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여성들은 가정 돌봄 증가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감염병과 관련해서도 최전선 일자리에 서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대개는 보상이 위험에 비례하지 않는 저임금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므로 감염에 더 취약하다.’ 그러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급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성평등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움을 표하는 취재진에게 브린힐뒤르 헤이다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이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2008년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시잖아요.”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는 의무적으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의 구조개혁 해법은 ‘유리천장 부수기’였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건강·교육·경제·정치 영역에서 남녀 간 상대적 격차를 측정해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구제금융 직후인 2009년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성평등은 경제위기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였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이전과 다를 필요가 없었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현 총리는 2020년 11월 여성 지도자 글로벌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대응이 먼저이며, 성평등 관련 정책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평등 문제 해결에 ‘적기’가 있다면 ‘항상’이며 위기 시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변화
아이슬란드는 한때 공격적으로 금융산업을 성장시키며 ‘현대의 바이킹’ ‘북유럽의 두바이’로 불렸다. 특히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례 없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정책금리를 14~15%까지 끌어올리며 해외 자본을 불러들인 덕분이었다. 당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카우프싱·란즈방키·글리트니르)의 자산은 국내총생산의 10배였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첫 희생양이 됐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외 자본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내각은 총사퇴했다.
아이슬란드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성평등 정책을 본격적으로 입안해 시행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리먼 자매 가설(Lehman sisters hypothesis)’이라는 이론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대형 은행들이 위험한 투자를 일삼으면서 일어난 재앙이다. 당시 대형 은행들의 이사회 성별 구조가 지나치게 남성으로 편중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위기의 발원지인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리먼 형제들)’가 ‘리먼 시스터스(리먼 자매들)’였다면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설이 떠돌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먼 자매 가설(가설 자체가 옳든 그르든)’이 아이슬란드엔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아이슬란드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금융위기의 책임을 따지기로 했다. 그 결과, 3대 은행 CEO를 비롯해 은행원 31명이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중 29명이 남성이었던 것이다.
경제위기 이듬해인 2009년에 최초로 여성이 아이슬란드 총리로 당선됐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승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세계 최초의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총리이기도 했다. 그를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 ‘최초’가 만들어졌다. 은행장, 경찰서장, 교도소장을 비롯해 레슬링협회장, 양치기협회장 같은 자리에서 성별을 따지는 경우가 사라졌다.
여성 의원 수 증가 역시 눈에 띈다. 1971년 5%에 불과했던 여성 의원 수는 1983년 15%를 달성한 후 정체를 거듭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정부가 붕괴된 직후 치러진 선거를 통해 여성 의원 비율은 38%까지 늘어났다. 2021년 9월 총선에서 이 비율은 절반에 근접한 48%까지 올라왔다(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19%이다).
“알싱기(Alþingi·국회의사당) 입구에 있는 동상 보셨나요?” 소르힐뒤르 쉰나 아이바르스도티르 해적당 의원이 물었다. 쉰나 의원이 말한 동상은 1923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여성 잉기비외르그 H. 뱌르나르손을 기리기 위한 동상으로 2001년 세워졌다. 그는 남성 ‘위인’ 동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여성 위인 동상은 21세기에야 처음 세워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상에 그가 한 말이 적혀 있어요. ‘숫자가 변화를 가져온다. 여성 의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의회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여성들은 입법을 통해 평등을 다져나갔다. 2013년에는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했다. 기업 이사회를 비롯해 각종 정부기관 및 위원회의 여성 비율이 40%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26%에 불과하다. 쉰나 의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지켜졌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벌금 같은 규제조항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이슬란드를 ‘성평등 천국’이라고 하지만 금융 관련 분야는 여전히 남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임금공시제와 임금차별금지법
한국 역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22년 8월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이라면 여성 임원을 한 명 이상 선임해야 하는 조항을 마련해두었다. 애초 개정안은 ‘이사회 3분의 1 이상을 여성으로 의무화’하는 것으로 발의됐지만 최종적으로는 크게 후퇴한 결과다. 아이슬란드와 마찬가지로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페널티가 없다.
하지만 ‘이런 법’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 문제 해결의 출발선 자체를 좀 더 앞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가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임금차별금지법(동일임금 인증제도)이 대표적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1960년에 만들어진 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강제조항 없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사회적 선언, 자발적 참여, 대타협으로는 100년이 지나도 성별 임금격차가 개선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개정안을 주도한 소르스테인 비글륀드손 전 사회평등장관은 이미 존재하는 법을 ‘아주 약간의’ 변화만으로 크게 개선시켰다. 개정 임금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차별 증명’의 책임 당사자를 사용자로 정한 데 있다. 일단 임금공시제로 노동자들의 급여 조건을 추적 가능하도록 했다. 사용자는 노동자 간 임금 차이가 발생할 경우 이 차이가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증명하는 기업에 동일임금 증명서(EqualPay Certification)를 발급하고, 동일임금 로고(EqualPay Symbol)를 제공함으로써 ‘성차별 없는 회사’임을 인증해준다. 25인 이상 기업은 모두 관련 심사를 받으며, 증명서 또한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만일 ‘이유 없는’ 임금격차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벌금은 하루에 약 50만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된다.

2008~2020년 성별 임금격차를 분석한 아이슬란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임금차별금지법 개정 후 성별 임금격차는 89%까지 좁혀졌다(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이 89만원을 받는다는 의미). 보고서에서 이 숫자를 짚어낸 브린힐뒤르 헤이다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은 단호했다. “89%는 평등한 게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성별 임금격차는 매우 복잡하고 여러 변수가 있으며 정확한 측정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정책과 도구를 계속 검토하고 시행해나가면서 고쳐야 해요. 어느 정도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합니다. 평등은 그 역동성 안에 있습니다.”
성별 임금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슬란드가 주목하고 있는 ‘다음 문제’는 성별 직종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다.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일수록 임금이 낮은 경향은 아이슬란드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슬란드 노동시장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성별 분리가 눈에 띄게 큰 나라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비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별과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반드시 써야 하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서는 남성을 뽑든 여성을 뽑든 차이가 없다. 이런 정책 덕분에 여성은 고용 단절 없이 언제든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여성이 많은 업계일수록 임금이 낮았다. 임금이 낮은 업계의 75%가 여성이 많은 서비스·교육·보건·돌봄 업계 등이다. 이들 업계는 여성의 교육수준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 대표적인 영역이기도 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성평등국에서 일하고 있는 트리그비 할그림손 연구원은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여성이 다수인 업계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통계학적으로는’ 얼마든지 맞출 수 있습니다. 시장 상황, 교육수준 등을 이유로 남녀 임금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거짓말할 수 없는 통계가 있습니다. 총수입입니다. 이 차이야말로 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차이를 설명하는 통계수치이기 때문이죠.”
2021년 9월 아이슬란드 총리실 산하 성별 임금격차 TF는 2년여에 걸친 조사를 마치고 ‘여성의 일 가치 재평가(Verðmætamat kvennastarfa)’라는 제목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권고안은 성별과 관련된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적인 직업’과 ‘여성적인 직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관련 교육을 진행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법과 제도로 좁혀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이는 질문을 새롭게 쓰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주로 여성의 일인) 유치원 선생님보다 (주로 남성의 일인) 건설 노동자가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국무총리실 산하 성평등국 사무실 벽에는 ‘진정한 평등은 생각하는 법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트리그비 할그림손 연구원은 “결론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매우 지난한 논의가 되겠지만, 성별 임금격차와 관련해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논의에서 더 나아간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24일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레이캬비크 내 여성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할베이가르스타디르 앞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성권리협회가 주최하는 ‘페미니스트 히스토리 워크(Konur sem kjósa:femínísk söguganga)’가 곧 시작될 참이었다. 이날 행사는 1975년 10월24일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Women’s Day Off)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됐다.
오늘날 아이슬란드가 성평등을 ‘국가 브랜드’로 삼을 수 있었던 변화는 이날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유엔이 1975년을 여성의 해로 지정한 것에 고무되어 시위를 기획했다. 10월24일 아이슬란드 라이캬르토르그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 인파는 기획단도 예상치 못한 규모였다. 유급 노동자는 물론이고 주부들도 쏟아져 나왔다. 전체 여성의 90%가 총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케블라비크 국제공항의 모든 항공편은 취소됐다. 은행 임원들은 커피를 직접 끓여 창구 업무를 봤다. 회사에 출근한 건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맡길 곳이 없어 아빠와 함께 출근한 어린아이들은 입에 사탕을 문 채 사무실 곳곳을 쏘다녔다. 저녁이 되자 레이캬비크 시내에는 쇠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준비하다 생긴 일이었다. 이른바 ‘일하는 여자’와 ‘일하지 않는 여자’가 구분되지 않는 날이기도 했다. ‘단 하루의 이벤트’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예컨대 가사노동)을 하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자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 ‘여성 총파업’이 벌어진 이듬해, 유급 출산휴가와 임신중단권이 보장됐다. 5년 뒤인 1980년에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비혼모’인 여성 대통령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가 선출됐다.
여성권리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뤼트 에이나르스도티르 씨(29)의 가족은 이 같은 변화와 역사의 물결 한가운데 존재한다. 2021년 10월24일 뤼트는 할머니(83), 어머니(64)와 함께 페미니스트 히스토리 워크에 참여했다. 특히 어머니 헬가 기슬라도티르 씨에게 10월24일은 각별한 날이었다. 당시 은행원이었던 헬가 씨 역시 1975년 여성 총파업에 참여했다.
뤼트 씨는 경제학을 공부했고, 일본 유학 중 코로나19로 인해 임시 귀국했다. 현재는 레이캬비크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아이슬란드어를 가르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구분은 일자리를 구할 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는 임금의 4%를 연금기금(한국과 달리 노후보장책인 연금은 물론 고용·산재 보험 역할까지 통합)으로 낸다. 고용주는 피고용인을 위해 8%를 낸다. 결과적으로 급여의 총 12%가 연금기금에 적립된다. 3개월 이상 일한 노동자라면 퇴직 이유와 상관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정부의 ‘구체적인 목표’를 믿는다”
만 16세 이상인 아이슬란드 노동자들은 소득 구간에 따라 매달 최고 46%에서 최소 37%까지 소득세를 낸다. 소득세율이 꽤 높은 편이다. 다만 매월 약 50만원의 개인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자가 실질적으로 납부하는 세금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뤼트 씨가 15만 크로나(약 137만원)를 벌었다면 소득세 37%를 떼야 하지만 월 소득공제 50만원이 적용되면서 실제 내는 세금은 3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같은 복지 및 세금제도가 성별 임금격차의 완충지대로 작용한다.
뤼트 씨는 외신이나 외국 친구들로부터 ‘아이슬란드가 성평등 나라라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슬퍼요. 이게 정말 최선이라고? 대체 다른 나라는 어떻다는 거야?” 그가 느끼기에 아이슬란드 내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차별받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목표’를 믿어요.” 이들은 1975년 10월24일이라는 ‘전설’로부터 4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문제를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모여 나눠 진다. “남자들 중에는 우리는 이미 평등을 이뤘다고, ‘더’ 주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때 엄마와 할머니를 비롯해 함께 싸우는 여성 동료들, 지지 그룹의 존재가 정말 큰 힘이 돼요.”
평등은 여성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레이캬비크 중심가에 위치한 레인보우 스트리트는 아이슬란드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거리다. 단적으로 국제앰네스티 아이슬란드 지부에는 여성 인권 담당자가 없다. 아이슬란드 지부가 2021년 한 해 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펼친 활동은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성별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인터섹스(intersex)를 위한 활동이었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강제로 수술할 수 없는 법을 통과시키는 데 주력했다. 성별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누구나 자신의 성별을 ‘X’로 표기할 수 있다(외국인도 사전입국심사 과정에서 ‘X’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여성 인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슬란드 사회가 ‘그다음’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브린디스 뱌르나도티르 국제앰네스티 아이슬란드 지부 간사는 “격렬한 ‘양성’평등 이슈가 지나갔기에 LGBTI(성소수자) 이슈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총리실 산하 성평등국에서 일하는 트리그비 할그림손 역시 아이슬란드의 성평등 정책과 법이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음을 강조했다. “법과 정부 부처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젠더를 초월해서 일합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브린힐뒤르 헤이다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한국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다고 했다. GS25 편의점 포스터에서 남성혐오 논란을 일으킨 손가락 모양을 해 보이기도 했다. “백래시는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오히려 여성운동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위험한 거죠.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논란은 한국이 바뀌기 위한 당연한 과정입니다. 무엇보다 새로 들어설 한국 정부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한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정부가 성평등 정책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고 있는 문제죠. 한국처럼 독창성을 가진 나라가 성평등을 위해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얼마나 바뀔지 기대가 되고 궁금합니다.” (취재도움 : 정창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레이캬비크·아퀴레이리/ 특별취재팀:장일호 기자, 이주연·이정환(<오마이뉴스>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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