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초과세수 논란, 실무진 물갈이로 답하는 최장수 경제부총리

세종=이민아 기자 2022. 1.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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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정에도 없던 기자간담회를 지난 17일 열고 기재부 세제실 대수술을 예고했다. 최근 불거진 세수 추계 오류의 원인 중 하나로 “세제 전문가만 모이다 보니 상당히 소통이 취약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상 다른 실·국의 인력으로 세제실 국·과장 간부들을 물갈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세금이 전망보다 덜 걷힌 세수결손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더 걷힌 ‘초과세수(당초 예산을 짠 것보다 세금이 더 많이 걷힌 규모)’를 이유로 문책성 인사를 예고한 것이다.

초과세수 논란은 ‘예상보다 세금이 너무 많이 걷힌다는 것’이다. 기재부를 향해 ‘선거용 돈 뿌리기’에 협조를 강요한 더불어민주당은 “초과세수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능력 부족”이라고 비난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2차 추가경정예산 이후였던 지난해 11월, 초과세수가 19조원 더 걷힌 것을 파악하고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에 대해 (기재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세입 규모는 11월 기준으로 본예산(282조7000억원) 당시 전망치를 이미 50조원 이상 넘겼다. 12월 세수까지 포함하면 연간 초과세수는 본예산보다 60조원 이상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측에서 화를 내는 이유는 초과세수를 진작 이 정도로 예측했었더라면, 지난해 연말 이재명 후보가 요구한 추경을 편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 논란을 다르게 본다. 세수를 정확히 예측하고, 예측한 수치만큼 세금이 걷히는 게 좋은 일이라는 측면에서 세수 오차는 분명 실책이지만 인사 물갈이를 거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국가를 가계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쉽다. 빚을 1억원 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다음달 수입이 300만원 들어올 것으로 예상해 그에 맞춰 소비를 했는데, 생각보다 경기가 좋아 수입이 350만원이 들어온 상황이다.

더 들어온 돈으로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빚을 갚아 가계의 재무 건전성을 개선시킬 수도 있고, 다음 달로 넘겨 소비 여력을 확충할 수 있다. 더 들어온 수입을 아껴놨다가 혹시라도 다음 달 수입이 줄어들면 보충하는 데에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수입이 300만원 들어올 걸로 예상했는데 250만원만 들어왔다면? 소비하느라 쓴 돈을 대출을 받아서 메꿔야 한다. 예측을 정확히 해서 50만원을 더 쓰게 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타당할까.

초과세수도 마찬가지다.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국가재정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국가 채무를 상환하고 나머지를 추경으로 사용하면 된다. 세수가 예상치를 밑도는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적자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하지만, 초과세수는 그렇지 않다.

양도세, 법인세 등이 예상보다 더 걷혀 발생한 초과세수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이 주된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한 것이 세금 풍년으로 돌아온 것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종합부동산세를 ‘조변석개(朝變夕改)’처럼 바꾼 것도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게 했다.

지금의 초과세수 논란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신나게 칼춤을 추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세수 추계 예측이 틀렸다며 비판받는 지난해 본예산, 2차 추경은 어떤 절차를 거쳐 확정됐나. 실무진이 작성한 세수 추계에 결재 사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홍남기 부총리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무회의서 이 세수 추계에 기반한 예산안을 승인했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예비 심사,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종합 심사, 본회의 심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초과세수가 잘못됐다면, 그 책임에서 홍 부총리, 문 대통령, 민주당 모두 자유롭지 않다.

‘최장수 기재부 장관’ 타이틀을 거머쥔 홍남기 부총리는 ‘세제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경제부총리로서 정부 본예산을 3번 편성한 홍 부총리가 어떻게 세수를 예측하는 지 몰랐다면, 무능력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예산 편성 때 필요한 세출 예산에 맞춰 세입 예산을 추계하지 않으면 정치권의 퍼주기 예산 요구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초과 세수는 주어진 여건에서 나랏돈을 엉뚱하게 쓰지 않으려는 고민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초과세수 논란에 ‘세제실 개혁’을 꺼내든 것은 추경 요구를 관철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민주당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 위해서로 보인다. 세제실 물갈이를 벼르고 있는 홍 부총리의 언사는 국가 재정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쓴 실무진에게 논란의 책임을 전가 하려는 것 같다. 자기 식구들 혼내는 것으로 밖에서 제기된 비난을 덮으려는 가장 같은 모습이다.

자기가 총대를 매야 할 책임을 실무자에 떠넘기는 조직의 수장을 보면 후배 공무원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런 수장이 최장수 장관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조직은 어떤 자화상일까. 그 조직의 미래는 어떨까. 이런 고민의 끝자락에서 사회 초년생인 MZ세대는 절망한다. 책임감 있는 어른도, 꿈꿀만한 미래도 없는 조직에서, 성장의 발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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