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북극곰 날씨
[경향신문]
곰이 물고기를 덥석 물듯 바닷가에 회 먹으러 갔어. 발길이 이어져 벗이 목회하는 순천 연향동의 한 교회도 방문. 최근 조각가 최병수 선생이 기후위기 속에서 아기곰을 데리고 유랑하는 북극곰 작품을 교회당 한쪽에 설치했다. 중매를 섰던 사람으로 그도 구경차. 엄마곰 아기곰, 곰이 두 마리, 곰곰이. 뉴스에 바짝 마른 체중으로 간신히 걷고 있는 북극곰이 나올 때마다 가슴 한쪽이 찌릇해져. 우리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후 위기 앞에서 기도하고 작은 실천으로 회심하는 동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요샌 북극곰이 살기 좋은, 북극곰 날씨. 난롯가에 불을 지피고 앉아 앤 색스턴(Anne Sexton)의 시집을 읽는 중. “네가 답이다.” 시인은 둘러앉은 식탁에서 소리친다. 마치 ‘신의 권능을 행사하듯’ 네가 답이다~ 가슴을 통째 울리는 소리. 상처 입은 여성은 계속 아프다는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세상에서, 앤의 시를 읽는 것으로 아픈 마음들을 잇고 뜨개질한다.
음악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 친구가 있는데, 북유럽의 음악을 가끔 틀고선 소개해줘 고맙다고 서신을 보내온다. 오로라가 환한 밤중에 들으면 제맛일 노래 하날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보내줘야겠다.
자장가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다 의자에 기대 잠들었는데, 눈벌판을 한없이 걷는 꿈을 꾸다가 깼어. 난로에 나무가 다 타고 없어 순간 추웠던 모양. 장작개비를 두어 개 더 집어넣었더니 타닥타닥 잉걸이 살아 올라온다.
한 스승에게 당돌하고 해맑은 제자가 질문. “하늘의 별은 몇 개나 되는 겁니까?” “네가 또 황당한 소릴 하는구나. 먼 곳의 일보다는 가까운 곳에 관심을 가져라.” “그러면 스승님. 스승님의 눈썹의 개수는 몇 개나 되는 겁니까?” “내가 너 때문에 제 명엔 못 살겠다. 쩝쩝.”
멀고 가까운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지. 북극곰도 걱정하고 내 눈앞의 일도 챙기면서 살아야지. 어디 나다니지 못하게 맵찬 눈이 내리면 북극곰처럼 웅크리고서 자장가를 부른다. 자장가로 내가 나를 잠재우는 밤엔 엄마곰 아기곰이 꿈속에 찾아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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