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2] 나혜석의 '노라', 그리고 엄마 아이돌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2. 1. 20.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만1089일! 예능 프로그램 ‘엄마는 아이돌’의 가희·박정아·선예·현쥬니·별·양은지가 무대를 떠나 있던 날들을 모두 합친 날이다. 평균 10여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 그들은 결혼·출산·육아로 무대를 떠났던 왕년의 스타들이다. ‘쥬얼리’의 박정아, ‘원더걸스’의 선예, ‘애프터스쿨’의 가희, 가수와 배우로 활동했던 현쥬니, 가수 ‘하하’의 아내로도 유명한 발라드 가수 별, ‘베이비복스 리브’의 양은지는 그동안 아내와 엄마로 살면서 육아와 살림에 전념했다.

무대가 어찌 그립지 않았겠는가! 엄마로서의 삶도 행복하지만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서, 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어서 무대로 돌아왔다는 그들. 다시 춤추고 노래하면서 몸도 무겁고 골반도 빠질 것 같고 뼈도 우두둑거린다지만 10여 년이란 공백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춤과 노래는 뛰어났고 그들은 빛났다.

그들을 보며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유명한 나혜석이 100년 전에 쓴 ‘노라’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이 1879년에 발표한 희곡 ‘인형의 집’은 나온 당시부터 문제작이었다. 그 작품이 번역되어 전 세계로 전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1921년 ‘매일신보’에 ‘인형의 가(家)’란 제목으로 연재되면서 소개되었다. 이에 더해, ‘매일신보’ 1921년 4월 3일 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영환이 작곡하고 나혜석이 작사한 ‘노라’의 악보가 실려 있다. 양백화 번역 단행본으로 1922년에 출간된 ‘노라’에는 나혜석이 작사하고, 서양식 군악대원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백우용이 작곡한 ‘노라’의 악보가 실려 있다.

악보로만 존재하는 두 노래를 살리는 작업은 내게 의미 있고 소중한 작업이었다. 아무리 확대해도 잘 보이지 않는 신문 속 악보를 재현하려고 오선보와 숫자 악보를 대조해가며 음 하나하나를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재현한 ‘노라’ 두 곡은 2017년에 강연과 공연을 결합한 ‘렉처콘서트(Lecture Concert)’에서 초연했고, 2020년 ‘경성야행(京城夜行)’ 음반에도 수록했다. 모두 나혜석이 썼으나 김영환 작곡과 백우용 작곡의 ‘노라’ 노랫말은 조금 다르다.

백우용 작곡의 ‘노라’ 중에 “나는 사람이라네. 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 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 첫째로 사람이 되라네”라는 노랫말이 나온다. 누구의 무엇이기 전에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 아닐까? 노래 마지막은 “아아 소녀들이여,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여라. 새날의 광명이 비쳤네”인데, 새날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지금 여기 우리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다시 내딛는 엄마 아이돌의 용기 있는 발걸음에 부디 행운과 축복이 있기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