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전종관→강창무, 환자 마음까지 생각하는 명의 [종합]

김한나 온라인기자 2022. 1. 1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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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tvN 방송 캡처


‘유 퀴즈 온 더 블럭’ 환자 마음까지 생각하는 명의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19일 오후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명의 특집이 전파를 탔다.

이날 다태아 분만 최고 권위자 전종관 교수는 “쌍태 임신을 많이 받았다. 다섯 쌍둥이도 제가 받았다”라고 말했다.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가 탄생한 것에 그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다. 저도 처음 다섯 쌍둥이를 받았다. 네 쌍둥이는 제가 지금까지 8명 정도 받았고 세쌍둥이는 400~450명, 쌍둥이는 4,000건 조금 넘는다. 이번처럼 오둥이는 처음이다”라고 말해 깜짝 놀라게 했다.

분만 당시 상황을 묻는 말에 전종관 교수는 “다급했다. 다섯 아기 모두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지, 한두 명이 잘못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병상을 비워둬야 해서 중환자실을 미리 비워뒀다”라고 답했다.

의료진이 총출동했다는 물음에 그는 “다섯 명이면 의료진이 20명이 붙는다. 산모와 수술하는 사람까지 하면 30명 이상이다. 굉장히 복잡한 상황에서 아기가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산부인과 중 분만 담당인 산과가 힘들다는 전종관 교수는 분만은 언제든 발생한다며 “다른 분들은 고생한다고 하는데 아기들이 달력도 못 보고 시계도 못 보니까 어른인 내가 참아줘야 하지 않냐고 한다. 사실 저도 새벽 3시에 병원에서 전화 오면 한숨 한 번 푹 쉰다. 기본적으로 저한테 진료를 보는 모든 임신부랑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임신부와 평균 10~15번 정도 만나는데 이름을 들으면 기억이 난다. 그 엄마가 아기를 받는다고 하면 한숨을 쉬어도 나가야겠다 싶다. 산과는 그게 좋은 것 같다. 아기만 받으면 엄마들이 고마워하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때 조세호는 “1~2분 차이로 형, 동생을 결정하는데 누군가는 착상한 게 형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전종관 교수는 “분만 순서대로다. 쌍둥이는 괜찮은데 삼둥이는 수술해서 낳을 때 고민된다. 첫째를 꺼냈는데 둘째가 양쪽에 똑같이 있으면 누구를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된다. 제왕절개 수술 때는 산전 초음파를 볼 때 자궁경부에 가까운 순으로 형제를 순서를 결정한다”라고 설명했다.

일란성 쌍둥이를 위해 국내 최초로 치료법을 도입했다는 그는 “태아 수혈 증후군이라고 해서 한 아기는 양수가 많고 한 아기는 양수가 거의 없는 병이 있다. 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레이저 치료법이 확립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못 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일본에서 많이 하는 센터가 있어서 환자가 생기면 그날 맞춰서 갔다.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을 때 환자가 와서 시술했다. 두 시간 뒤에 초음파를 봤더니 양수가 작은 아이가 방광이 안 보였는데 보였다. 그때 그 감격은 대단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억에 나는 산모가 있냐는 말에 그는 “엄마가 큰 사고를 당했거나 하면 잊히지 않는다. 아이를 잘 낳고 조금 안 좋긴 했는데 CT를 찍으러 갔는데 갑자기 혈압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숨 쉬는 게 불편하지 않다더라. 농담도 했는데 그러고 나서 산모가 30분 있다 사망했다. 저도 이해가 안 되고, 분만을 접는 의사가 많다.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전종관 교수는 “빚을 갚자고 생각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시작한다. 그렇지만 잊히지는 않는다. 죽을 때까지 기억에 안고 가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는 명의는 가장 좋은 질료를 제공하는 것이라 말하며 “임신부들의 공감까지 더한다면 더 좋다. 대학병원에 있더라도 공부 안 하고 타이틀만 가지면 명의가 될 수 없다. 명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부한 대로 진료하는 것이 명의다”라고 말했다.

tvN 방송 캡처


간담췌외과 의사 강창무 교수는 간담췌외과를 선택한 이유로 “음식을 먹으면 입에서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거쳐서 변으로 나온다. 음식이 지나가는 자리에 간, 담, 췌장이 없다. 췌장은 음식물이 곧장 지나가는 장기는 아니지만 음식물 소화를 도와주는 장기다. 그런 장기처럼 누군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시도했다”라고 밝혔다.

췌장 절제술 분야 논문 수 전 세계 상위 0.1%라는 그는 “최근 10년 동안 췌장 절제술 관련 논문에서 전 세계 2만여 의사 중 50명 안에 든다고 하더라. 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구나 싶었다. 환자의 실상에 살아 숨 쉬는 연구를 하겠다는 결기를 다지게 됐다”라고 전했다.

초기 진단이 어려운 췌장암은 내시경 등으로 조기 검진이 가능하나 췌장은 음식물이 지나가지 않아 접근이 불가하고 몸 깊숙한 곳에 있어 발견이 어렵다고 밝혔다. 위장과 척추 사이 위치한 췌장은 주변 중요한 혈관이 밀접하게 분포돼있다.

작은 혹이라도 혈관에 침범하면 수술이 불가한 경우가 많다는 강창무 교수는 “수술 가능한 경우가 1, 2기인데 진단 당시 수술할 수 있는 경우가 15~20%다. 수술하지 못하는 3, 4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암 중 하나다. 췌장이 물컹물컹하고 꿰매도 회복이 잘 안 된다. 수술을 하고 나면 생존율 향상을 위해 항암 치료가 필수인데 더딘 회복에 항암 치료를 받기 힘든 상황이 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절대로 췌장암 수술은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최근에는 의학적·해부학적 지식, 수술 후 관리법의 발전으로 환자들이 회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전했다.

췌장암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그는 “어느 날 이상하게 ‘이 통증은 뭐지?’ 싶을 때가 있다. 아프진 않은데 살면서 처음 느끼는 기분 안 좋은 통증이 반복된다던지 몸무게가 갑자기 빠진다던지, 다이어트 시 급속도로 감량이 될 때, 황달 증상이 생길 때다. 당뇨가 없다가 갑자기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암의 먹이는 포도당이다. 포도당을 먹어야 하는데 환자가 당뇨가 아니면 암세포가 스스로 당뇨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강창무 교수는 환자 진료 시 진료 철학이 있다며 “가족처럼 진료해드리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저는 말기암 환자의 가족이었다. 어머니가 제가 의과대학 들어가고 2년 차가 됐을 때 직장암 진단을 받으시고 수술을 하셨다. 지금은 대장암은 대부분 조기 진단으로 완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당시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지 수술 후 암이 재발하고 마지막 한 달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해줄 게 없으니 퇴원을 권유했다. 되게 많이 힘들어하셨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철이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 만나고 하느라고 ‘돌아가시는 건가?’ 걱정만 했다. 투병하시던 2년의 시간이 기억이 안 난다. 암환자의 가족으로서 느꼈던 마음이 진료 현장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강창무 교수는 “어머니가 마지막에는 힘들었던 게 정말 통증이 심하셨다. 뼈까지 전이가 됐다. 그때 진통제 하나 못 드렸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회진 돌다 보면 제일 감정 이입되는 게 고통으로 밤새 잠을 못 잤다는 환자 말을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전공의 선생님이 너무 밉다. 진통제 하나 주면 되는 거를 왜 그랬는지. 의대 예과 2학년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자료를 찾아보고 예후가 안 좋으니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때부터 어머니는 돌아가신 분이 된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어머니를 위해서도, 아픔도 나눌 수 없던 무력한 가족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환자들과 여건이 똑같지 않냐. 이 분들을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진료하다 보니 암이 우리 삶을 잠식해서 생명을 끊는 순간이 오겠지만 암이 더는 삶에서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 것들은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저한테 주신 교훈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의 손을 갖게 된다면 고치고 싶은 환자가 있냐는 물음에 그는 “어머니를 고쳐드리고 싶다. 당시로 돌아가서 완치한 어머니와 일상의 순간들을 나누고 싶다”라고 전했다.

tvN 방송 캡처


산부인과 생식 내분비학 전문의 김미란 교수는 “아기 때부터 사춘기, 가임기, 폐경기 이후까지 모든 여성 질환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저는 자궁 근종 환자를 많이 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궁 근종 환자가 최근 많이 늘고 있다. 요즘은 초경이 빨라져서 여성 호르몬에 대한 노출이 일찍 시작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뒤늦게 질환을 발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미란 교수는 “문제는 별 증상이 없을 수 있다. 증상이 없는 경우 근종 같은 경우 50% 정도 된다. 단순이 배가 나온 줄 알았는데 커다란 근종인 경우가 있다. 월경 과다, 극심한 생리통, 복부의 종괴 및 방광 압박 등의 증상이 있다”라고 밝혔다. 자궁 근종을 모르고 방치할 경우 난임의 원인이 되며 생리 양도 많아진다고 한다.

산부인과를 선택할 때 결심했던 신념이 있다는 김미란 교수는 “인턴 실습 시절 당시 높은 출산율로 인턴생도 아기를 받았다. 새벽에 아기를 받게 됐는데 간호사에게 아기를 주고 산모에게 가야 하는데 아기가 저를 잡고 안 놓더라. 생명의 힘에 너무 감동했다. 소중한 자궁을 지켜서 여성 건강을 위해 평생 이바지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수술이 너무 어려웠다. 환자한테 수술이란 건 또다시 할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수술에 대해서 욕심이 많아 양손잡이가 되면 수술을 더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왼손으로 밥을 먹고 했다. 그래서 양손잡이로 완성이 됐다”라고 밝혔다.

김미란 교수는 “외래에 있는데 산모가 갑자기 제 손잡고 무릎 꿇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왜 이러냐 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기 낳아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 수술 끝나고 불안하고 초조하던 얼굴들이 수술 잘되고 나면 너무나 환하게 웃는다. 그 얼굴 보면 너무 기쁘다. 환자의 잃었던 웃음을 찾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전했다.

하루 일과 중 저녁에 서류와 의학 자료를 탐독한다는 김미란 교수는 “해야한다. 의학이라는 건, 어제의 의학은 오늘은 틀릴 수도 있다. 책이 판이 바뀌면 구판은 바로 버린다. 새로운 방식이 나올 때마다 배우고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열정을 폭발시켰다.

2010년 유방암을 자가진단했다는 그는 “수술이 잠시 늦춰진 사이 초음파실 가서 검사를 했는데 안 좋은 거 같아 조직 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우리나라 유방암 정말 치료 잘한다”라고 밝혔다.

김미란 교수는 “내가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해서 애들한테 가족력을 준 것 같아서 미안했다”라고 전했다. 수술받고 항암치료를 하며 쉬려고 했다는 그는 자신이 봤던 환자들에 대혼란이 와서 축소해서 진료를 하기로 했다며 “진료하다가 옆방 가서 토하기도 하고 했다. 제가 환자로서 경험해보니 환자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tvN 방송 캡처


강원도 왕진 의사 양창모는 “왕진 의사가 굉장히 드물다. 강원도 내 의사가 3천 명 정도 있는데 왕진 의사는 3명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전공의 과정에서 왕진을 처음 갔다. 지인분 중 장애인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셨다. 장애인 분들 중 집에서 못 나오는 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배우는 과정에서 왕진을 접하는 경우가 없다”라고 밝혔다.

전공의가 된 후에도 왕진을 계속했다는 그는 “전공의를 마치고 원주에 있는 의료 협동 조합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낮에는 진료를 보고 저녁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왕진을 다녔다”라고 전했다.

춘전으로 병원을 옮기며 왕진을 멀리했다는 양창모 의사는 병원에 환자가 많아지니 진료 시간이 짧아졌다고 밝혔다. 어느 날 할머니가 오셨는데 의자에 앉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옆에서 부축을 하면서도 진료 생각에 초조해졌던 그는 이것은 아니라고 느껴 왕진을 선택했다.

양창모 의사는 “쉽지 않다. 길이 잠긴 마을도 있다. 가을이 되면 물이 불어나는 데 있던 길이 잠긴다. 여름에 차로 갔던 곳을 배로 가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왕진 가기 전에 등산화를 꼭 챙겼다는 그는 “언덕에 있는 할머니 댁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신발 앞에 검붉은 띠가 지나가길래 보니 뱀이더라. 유혈목이라는 뱀인데 해독제가 없어 물리면 죽는다. 그때부터 등산화를 신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하루 4가구 정도 간다는 양창모 의사는 ‘집이 곧 병원’이라고 느꼈다며 “어떤 할머니의 경우 관절염이 있으신데 좌식 생활을 하셨다. 집에 식탁이 없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집에 식탁이 없고 좌식 생활을 하신다. 그게 사실 큰 문제를 유발한다. 양반다리 하고 있는 게 무릎에 굉장히 부담을 많이 준다. 그것을 바꿨다. 마을 회산에 입식 테이블을 뒀다. 진료실 안에 있었으면 몰랐던 세계다. 의사가 왕진을 가면 환자분이 자신의 집에 앉아있다. 집의 가족사진을 보면 환자의 가족, 직업들이 눈에 보인다. 그걸 보게 된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그는 “왕진 가서 어르신들한테 해드리는 일이 꼭 의사로서 해드리는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돌봄이라고 하는 게 주사나 약만 있는 게 아니다. 계단, 난간을 만들어드리고 굉장히 많은 일들이 돌봄이 필요하다. 그런 일들을 해내려면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무리가 되면 가능해지더라”라고 밝혔다.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냐는 물음에 양창모 의사는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에 병원에 가고 계신다. 거동이 불편하신데 시내로 약을 타러 가는 거다. 이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마을에 제일 좋은 게 마을 회관인데 의사들이 주기적으로 와서 진료를 봐준다면 굳이 어르신들이 힘들게 시내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명의로 “환자의 삶에 가까이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좋은 이웃이 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40분에 방송된다.

김한나 온라인기자 klavie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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