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제이처럼 애니메이션이나 볼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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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뭔가 희망차고 대단원의 막을 시작해야 하는 무언가를 언급하거나 계획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럴 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또 한 번의 새해가 남아 있다.
오래도록 끈 박사를 갓 졸업했을 때가 커다란 뭔갈 이룬다고 개운한 게 아니라 그만큼 처절하게 공허해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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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뭔가 희망차고 대단원의 막을 시작해야 하는 무언가를 언급하거나 계획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럴 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또 한 번의 새해가 남아 있다. 바로 설이다. 혹시 아직도 2022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다그치기 전에 설 전까지 잠깐의 유예기간을 주면 어떨까? 인생에서 엉킨 실타래만큼 답답한 게 팽팽하게 당겨놓기만 한 '열심'이란 고무줄이다. 강요된 열심은 나태로 보이는 무기력을 낳는다. 너무 열심히 살다 보면 이따금 왜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잊어버리니 2021년이라고 생각하며 잠깐 '열심'에서 잠적하자.
2021년 MZ 세대를 뒤흔든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우승한 홀리뱅의 리더는 허니제이였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대중에게 공개한 '나 혼자 산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면 정화가 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미래가 불안정한 댄서라는 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여러 일을 하고 늘 경쟁을 준비하며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드는 일상에서 애니메이션은 그 '열심히'를 계속할 수 있는 쉼표이자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다소 개인적인 추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면 타인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이겨보는 게 소위 말하는 요령이 되지 않을까?
무기력한 이들에겐 '허니 앤 클로버'의 애니메이션판을 보라고 하고 싶다. 사람마다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외로운 기억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교환학생을 가서 난생처음 혼자 살던 때가 그랬다. '윙' 하는 냉장고 소리가 새벽에 들릴 때면,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해질 때면 냉장고가 그렇게 나를 외롭고 불안하게 또 무기력하게 했었다. 음성이나 텍스트로 표현한 적 없던 그 기분을 허니 앤 클로버의 남자 주인공이 콕 짚어내어 똑같이 보여주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낼 수 있었고 그들의 유머러스한 일상과 고난, 번민 그리고 사랑 이야기에 동화되어 기쁘고도 슬픈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가끔씩 무기력한 날이 오면 다시 마주하곤 한다.
공허한 기억에 매인 이들에게 '마법사의 신부-특별편, 별을 기다리는 이'를 추천하고 싶다. 오래도록 끈 박사를 갓 졸업했을 때가 커다란 뭔갈 이룬다고 개운한 게 아니라 그만큼 처절하게 공허해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충만한 듯 일상을 소화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때 접한 '마법사의 신부-특별편, 별을 기다리는 이'의 도서관과 그곳에 머무는 남자가 그랬다. 이미 끝나버린 기억의 시간에 발이 묶인 채 다음으로 가지 못했다. 좋은 추억도 나쁜 기억도 과거를 흘려보내지 않으면 흉측한 미련이 될 수 있다는 걸 덕분에 깨달았다. 그때 그 시간에 쓰던 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후에야 비로소 내 인생에서 그 장으로 덮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건은 죄가 없지만 버렸다. 그 물건에 묻은 감정과 기억이 마치 물귀신처럼 그 좋지 못한 시간의 기억으로 나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작년에 남은 무기력과 공허함을 어르고 달래서 털어내고 설 쯤에는 온전히 새해를 맞이하여 지금을 살아갈 수 있길 빈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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