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기적처럼, 울산에서 함께 웃으리라 "AGAIN 2012"
[경향신문]
10년 전 런던 올림픽 준비하던 중
병역기피 의혹 불거진 박주영 위해
“대신 군대 가겠다” 감쌌던 홍 감독
은퇴 기로의 순간 다시 손 내밀어
박 “우승컵으로 보답할 차례”
끊어낼 수 없는 인연이다.
2012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며 기자회견 단상에 올랐던 스승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53)과 제자 박주영(37)은 꼭 10년이 흘러 같은 자리에서 마주했다.
홍 감독은 19일 경남 거제의 한 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나 “(박)주영이가 마지막에 신나게 뛰고 은퇴한다는데 스승으로 도울 수 있다”고 말했고, 박주영은 “날 받아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화답했다.
■군대에 대신 가겠다던 홍명보…마지막 은퇴 무대도 마련했다
홍 감독은 제자를 바라보며 “10년 전 투샷하고는 분위기가 다르지 않냐”고 멋쩍게 웃었다. 두 사람 모두 병역기피 의혹이라는 날선 여론에 직면했던 2012년 6월13일 기자회견이 머릿속에 떠오른 듯했다.
당시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얻은 장기체류자격을 이용해 사실상 편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의 배신에 여론은 들끓었다.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도 박주영의 대표팀 발탁을 꺼렸을 정도다.
그러나 올림픽축구대표팀을 이끌던 홍 감독은 달랐다. 홍 감독은 기자회견을 자처하면서 “(박)주영이가 군대 안 간다고 하면 제가 대신 간다고 말씀드리려 나왔다”고 말했다. 결국, 박주영은 런던 올림픽에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참가해 일본과의 3·4위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사상 첫 메달을 안겼다. 지도자 홍명보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순간이자, 박주영이 병역기피자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해피엔딩이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다시 울산에서 만났다. 이번에도 스승이 친정팀 FC서울에서 은퇴 위기에 몰린 제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력에 보탬이 될지 확신이 없는 시점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박주영은 지난해 프로에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단 1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홍 감독은 “주영이 같은 선수가 은퇴를 고민할 때 누군가는 마지막을 신경써야 한다. 나도 좋은 지도자 밑에 있었기에 코치 감독이 됐다. 울산에서 같이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박주영의 또 다른 스승인 최용수 강원FC 감독이 “홍 감독님에게 고맙다”고 찬사를 보낸 대목이기도 했다.
■박주영 “우승컵으로 보답할게요”
박주영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스승에게 자신이 보답할 차례라고 말한다.
홍 감독이 울산에 부임한 첫해였던 지난해 아깝게 라이벌인 전북 현대에 우승컵을 내준 것을 밖에서 지켜봤던 터. 이번엔 같은 팀에서 힘을 합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다행히 울산에는 이청용과 고명진, 윤일록 등 인연을 맺은 선수들이 많아 적응에도 걱정이 덜하다.
박주영은 “선수로 마지막을 후회없이 보내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시즌이 끝날 때) 감독님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제자의 발언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무리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다.
홍 감독은 “난 우리 팀에 3번째 스트라이커가 필요해 주영이를 데려온 것”이라며 “주영이가 지금껏 해왔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서두르지 않고 좋은 컨디션을 만들면 내보내겠다. 우리 팀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 득점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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