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현상학 - 모리스 메를로-퐁티 [성기완의 내 인생의 책 ④]
[경향신문]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88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불문과를 다녔지만 종종 타 학과의 전공과목을 들었다. 2학기 들어 ‘예술철학’이라는 과목을 신청했다. 미학과의 오병남 선생님이 맡으신 그 강의에서 메를로-퐁티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거다.
그러나 정작 강의를 열심히 듣지는 못했다. 2학기 개강하고 올림픽이 열렸고 학교문은 닫혔다. 휴교령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고 파랬다. 청명한 하늘을 보며 우리는 빈둥거렸다. 10월이 되어 학교문이 다시 열렸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친구들은 모두 군대에 가고 없었다. 나는 빈 강의실에 혼자 엎드려 자곤 했다. 때로 기독교 계통의 친구들이 성경을 들고 내 잠을 깨웠다. 그러면 나는 도망치듯 한산한 도서관으로 가서 메를로-퐁티를 읽었다. 어려운 글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정신이 번쩍 났다. 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2년 후,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고, 메를로-퐁티의 주저라 할 <지각의 현상학>을 친구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아직 번역본이 없던 때였다. 김도현, 박성윤이라는 정치학과 대학원생, 불문과의 김형암 형,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프랑스어의 미로를 헤맸다. 나는 ‘생활세계(Lebenswelt)’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 같은 현상학적 어휘들에 확 끌렸다. “주관성과 상호주관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현재의 경험 안에서 과거의 경험을, 나의 경험 안에서 타자의 경험을 되살림으로써 그 둘은 하나가 된다.”(<지각의 현상학>, 서문) 당시의 우리에게는 이런 말이 필요했다. 과학적, 또는 심리학적 자극-반응의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몸 자체가 있었다. 우리는 한 시대의 출구에 서 있었다.
성기완 시인·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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