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보듬는 지도자에겐 복이 있나니! [기민석의 호크마 샬롬]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런던의 임뱅크먼트 역에서 학교까지는 고작 1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오갈 때마다 곤욕이었다.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이라 불리는 노숙인들이 내미는 손을 서너 번은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목회 수련생이었지만 아껴 살아야 하는 유학생이었기에, 부끄럽지만 갈등이 컸다. 주머니에서 동전이 아니라 지폐가 잡히면, 그냥 지나가도 하나님이 눈감아 주시길 바랐다. 잘 살고 복지가 잘된 나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게 뭔지.
사실 영국 사회가 그들에게 적지 않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홈리스 피플은 아무리 나라가 잘 챙겨 줘도 또다시 거리로 나서서 노숙을 한단다. 다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그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세계나 생활 철학이 독특한 것이었다. 아무리 데려다가 먹여 주고 교육을 해줘도 또다시 거리로 나선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그렇게나 밥을 퍼 주어야 할까?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그들을 교육까지 시키는 것은 오히려 불의한 것 아닐까?
그런데 성서의 잠언은 이런 말을 한다. "높은 이자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로 베풀어질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다."(28:8). 아파트 값이 올라 배시시 웃음 나는 자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잠언은 당시 상류층 사회에 즐겨 회람되던 글인데, 고대 이스라엘에서 그들은 결코 부동산 투기나 고리대금과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전한 말이었다. 당신의 높은 소득은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기 위한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다.
잠언 28~29장은 미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위한 조언으로 알려져 있다. 잠언은 오랜 인간사회의 경험이 축적된 글이며 동시에 신의 뜻으로 여겨지는 메시지다. 사실 잠언은 매섭게 가난한 자들을 비평도 한다. 물론 자책이 큰 경우다. "게으른 사람아,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 하면, 네게 가난이 강도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6:9-11). 그러나 잠언은 사회의 동료들이 가난한 이들을 손가락질할 여지는 주지 않는다. 특히 사회의 지도자가 가난한 자의 편이 되지 않으면 짐승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가난한 백성을 억누르는 악한 통치자는 울부짖는 사자요, 굶주린 곰이다." (28:15). 가난을 멸시하는 이들도 바싹 긴장하게 만든다. "죄악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부자가 되는 데에만 바빠서, 언제 궁핍이 자기에게 들이닥칠지를 알지 못한다." (28:22).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라는 교훈은 시간이 갈수록 빛바래지는 듯하다. 하지만 하늘의 마음을 전하는 성서만큼은 그 마지막 보루를 끝까지 지키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서 다음의 구절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보자.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쯤은 못 본 체한다." (29:7).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매정하게 대해도 하늘의 마음은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따뜻하다. 그래서 다음 구절이 마음에 닿는다. "가난한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다 함께 살고 있으나, 주님은 이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 (29:13).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경험에서도 똑같다. 가난한 사람이 착취하는 자가 되기도 하고, 착취하던 자가 한순간에 가난하게도 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를 살피고 그들의 복지를 염려하는 것은 사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든든한 보험인 셈이다.
이 잠언은 사회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이의 귀를 쫑긋하게 할 말도 남겼다. "왕이 가난한 사람을 정직하게 재판하면, 그의 왕위는 길이길이 견고할 것이다." (29:14). 힘 있는 자들이 배고픈 이들을 더 배고프게 만들면 그 사회 지도자의 명운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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